주말 내내 그리고 어제인 월요일까지 너무 춥고 떨려서 이불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도 못하고, 또 음식에 대한 생각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사흘을 보냈다.
오늘 아침에서야 조금 나아진 듯하여 한국사람들의 특기인 '정신력'으로 학교에 나갔다.
버스 안에서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자꾸 웅크리면서도 '나는 오로지 성실함으로 승부한다'는 생각에 흐뭇해 했다.
'이 놈들 놀랠거다 아마. 이렇게 몸이 불편한데도 학교에 오는 것을 보면 너네들 밥먹듯이 학교 빠지는게 조금은 반성될걸? 흐흐흐.'
한국에서라면 이 정도의 예측이 가능하지 않겠나? 하지만 삶의 풍성한 예측 불가능성이여......
교실에 도착해서 선생님이 어째 좀 좋지 않아 보인다고 하셨을 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예, 지독한 감기 때문에 고생 좀 하고 있슴다. 하지만 괜찮슴다."
내가 준비된 답변을 마치 잘 훈련되었으나 별 생각은 없어보이는 TV 인터뷰 상의 사병처럼 씩씩하게 마치자 교실 분위기가 싸늘해지는게 느껴졌다.
갑자기 옆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될 수 있는 한 내게서 멀리 떨어진 자리로 가 앉으려고 자리 싸움이라도 벌일 기세였다.
'감기 걸렸으면 집에서 쉬지 왜 나와서 민폐를 끼치는지 몰라'하는 눈치가 전해져 오면서 결국 학생들끼리 짝을 지어서 대화를 하는 순서에는 나 혼자 멍하니 있어야만 했다.
아무도 내 옆에 앉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만약 전염이 된다면 이미 한 교실에 있는 조건 자체로도 충분한 것이니 너무 그렇게 요란떨지 말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은 두 시간이 지나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도 내가 교실에 남아 있자 아무도 교실 안으로 들어오지를 않았다.
속으로 몇 번이나 '그냥 집에 갈까'하고 생각했었지만 슬그머니 화도 나고 오기도 생겨 수업이 끝날때까지 남기로 했다.
두번째 시간이 시작되자 지각을 한 일본 여학생이 볼 일이 있어 늦었노라고 하고는 내 옆의 빈자리에 덜썩 앉았다. 내가 얼른 '나한테서 감기가 옮을지 모르니 원한다면 자리를 바꿔도 난 괜찮다'고 말해 줬다.
다른 학생들이 다들 그 일본 여학생의 반응을 숨죽여 기다리는데 그 여학생이 너무나 이쁘게 생긴 입술을 움직이며 '난 그런거 신경안써요'라고 말했다.
"그럼 그렇지. 하느님께서 나를 이렇게 혼자 있도록 내치실 분은 아니지... 평소부터 교실에서 제일 이쁘고 뭔가 행실이 남다르다 싶었는데 역시나 남을 배려하는 마음씨도 제일 예쁘군......제일 난리치던 저 표독스런 표정의 독일 여자애는 죽었다 깨나도 이 아이의 반도 못따라갈걸......"
그러나 예측이 들어맞는다고 흐뭇해하는 것도 잠시 뿐이었다. 그 뒤로는 그 여학생하고 짝이 되어 함께 작업을 해야 했는데 세상에나, 행실이 남다르게 정숙해 보였던 그 여학생의 꽉 끼는 바지 지퍼가 열려 있는 것이었다.
그걸 본 순간부터 갑자기 열이 다시 확 오르기 시작하더니 한기가 느껴졌다. 그런 상황에 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른다. 그런 상황이 얼마나 답답하고, 가혹하고, 안쓰럽고, 미안하고 등등 하는지......
그 여학생은 아무 것도 모른채 자꾸 내 앞에 앉아서 '몸이 많이 아픈가 봐요.'하고 있고 나는 자꾸 괜찮다면서 노트에 무엇인가를 쓰는 척하고 있고...
쓰러지기 직전까지 얻어맞은 그로키 상태의 권투선수에게 승패를 떠나서 경기 끝을 알리는 종 소리만큼 반가운게 있을까?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에 와서 침대에 쓰러졌다. 그래도 경기장에서 쓰러지지 않은게 다행이라면서 스스로 막 위로해 가면서......
우리들의 삶은 때때로 예측가능성과 예측불가능성의 씨름판이 된다. 하지만 예측불가능성이 항상 이기게 되어 있는게 이 씨름판이고 또 그렇게 우리들의 삶이, 또 이 세상이 돌아가야만 한다.
우리가 이렇게 혹은 저렇게 예측하고 준비해서 행동한 뒤 잠깐 흐뭇해 할 수는 있지만 결국 멀리보면 세상은 항상 우리의 예측과는 다르게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 대로 완성되어 가고 있는 이 세상을 믿는 사람이라면 잘 정리된 예측 가능한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예측불가능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적절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같은 이치이다. 타인에게 향하는 나의 말과 행동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단순한 삶의 모습 그것이어야 하고 너의 변화 무쌍하고 예측 불가능한 삶에 대해서는 내 뜻대로 움직이기 보다는 너의 발전을 위해 내가 다양하게 변화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나의 예측, 나의 판단을 너무 과신해서는 안된다. 그 동안 나는 아주 많이 나에게 속아왔다. 결국 나는 나를 믿는 사람이기보다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왔다.
세상은 결코 내 뜻대로 펼쳐지지 않는다.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을 고대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오늘도 하느님의 뜻에 받는 사람으로 한 걸음 더 변화되기를 갈망하며 하루하루를 더 없이 소중한 선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정말 오늘같은 예측 불가능한 하루는 어렵다. 변화도, 적응도......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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