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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813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12 조회수328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8월 13일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3-15

그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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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오늘 복음에 다시 어린이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등장은 어린이 스스로가 아니라 누군가에 이끌려 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린이들을 주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러나 이 청은 이내 거절당합니다. 

사람들이 어린이들에게 손을 얹어주십사고 청하러 온 장면에서 제자들은 그 어린이들을 데려온 사람들을 꾸짖습니다.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을 나무란 것을 보면 제자들의 생각에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주님을 귀찮게 해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들이 끌려온 대로 그들은 하느님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이끄는 대로, 가르치는 대로 따라하는 것이 전부인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위대하시다고 해서 깨달음도 없는 이들이 그분 앞에 서는 것을 제자들은 필요없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제자들의 행동을 주님이 막으십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이 어린이들 위에 주님의 손길이 얹어집니다. 그리고 주님은 갈 길을 가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에서 그들은 하늘 나라의 주인공들과 닮아 등장합니다. 어른에 비하면 세상 산 것으로 가장 부족한 나이의 어린이들이 죽어서야 가게 되는 하늘 나라의 사람들과 닮아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들에겐 주님의 가르침이 아닌 주님의 손길이 주어졌습니다. 


주님의 손길은 마치 그들과 손을 잡은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도대체 아무것도 모르는, 부족이란 단어가 떠나질 않는 이 어린이들에게 바늘 구멍처럼 어려운 하늘나라가 이렇듯 쉽게 주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린이는 참 신비스럽습니다.  어린이의 현재는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항상 모자라고, 항상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어린이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항상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는 판단의 대상이 됩니다. 끌려다니고, 키워지고, 먹여지고, 가르침을 받고 사는 것이 어린이들의 삶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어린이는 불가능한 존재로 모든 것을 일찍 판단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하느님에 대해서 이런 태도들은 자주 어린이에 대한 가르침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아이들이 배워봐야 하느님을 어떻게 배우는가? 그 나이에는 성당에 나오는 것만해도 잘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쉽게를 외치며 그 단어가 하느님께 다가가는 친숙함이 아니라 아이들의 부족함 때문이라는 식으로 밀어붙여 결국 가르칠 것이 별로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러니 그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일은 나중에 크면 알아서 다 할 일이라는 식으로 미뤄도 별 할 말이 없는 이야기가 됩니다. 교리서는 점점 쉬워진다는 말로 그림책이 되어가고 어린이에게 주어지는 것은 세상의 즐거움을 닮아가는 이유가 됩니다. 주일학교가 아이들에게는 가기 싫은 족쇄가 되고, 부모들에게는 불편한 보호소 정도의 의미가 주어질 뿐입니다. 어린이들이 가득 한 것이 교회의 축복된 미래라고 말하고 강조하긴 하지만 지금처럼 인정받지도 못하고 강제로 이유 없이 다니는 성당생활이 어른이 되어서 신앙적인 깨달음으로 다가올 지 아니면 불편한 기억과 추억의 장소가 될지 긍정적인 미래를 진단하기엔 어려운 현실입니다. 


어린이들에게 대하는 우리의 많은 모습들은 아이들이 주님께 다가오는 것을 귀찮아 하는 제자들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탕을 더 이상 못받게 되었다고 실망하고 복사 손에 쥐어진 사탕바구니에 눈길을 쏟는 영성체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면 더욱 긴 한숨이 나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어린이를 그런 시선으로 보지 않으십니다. 어른들에게 이 모자란 어린이처럼 되는 것이 하늘 나라에 들어서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보가 되어라는 뜻이 아니라면 우리는 여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처럼 어린이는 어리지도 부족하지도 않습니다라는 말을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사실 하느님을 모르는 세상에서조차 어린이는 부족함으로 판단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보지도 못한 미래가 그들에겐 항상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린이는 그들이 가진 것 전부로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본대로 느낀대로 행동하며 그 부족한 지식이 삶의 전부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어렵다는 말은 배우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며 모른다는 말은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느끼고 깨달으며, 표현하고 행동합니다. 

하느님에 대해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인생이 어린이의 특징이 아닙니다. 보고 들으면 볼 수도 들을 수도 그리고 그 나름의 방식으로 깨달음과 실천이 가능한 가장 작은 이가 어린이입니다. 천국에 대해 듣고도 내 이익과 견주고 결과를 미리 예상하여 선택하며 살 수 있는 머리는 아직 없으나 들은 대로 살아가면서 그 자체로 천국을 표현할 수도 있는 사람이 어린이들입니다. 


복음을 대하며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영악한데요!"라고 말하던 부모님들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배운 것이 그렇다면 그래서 감출 수도 없어서 그렇게 나온 것이라면 그럴수록 더 좋은 것을 주어야 하고 가르쳐야 하며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습니다. 


요즘 세상은 오히려 어린이들의 재능이라는 것을 지식에서 감성, 감정까지 파악하여 더 빠른 교육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추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느님에 대한 가르침을 어리다는 이유로 미루고 미루어 결국 바라는 것은 나중에 크면 깨닫겠지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새를 보입니다. 성당에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내미는 일은 발전을 하고 하느님을 아는 일에 대해서는 지극히 조심스러운 이 모습은 겉으로는 세상에 찌들린 아이들에게 휴식이란 이름으로 주어지지만 결국 성당에 불필요한 이들로 쫓아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는 이들이 어린이들의 발걸음을 돌려세운 복음의 짧은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것을 가르치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비자가 세례를 받는 데 드는 시간이 일 년이라 생각해도 시간으로 치면 일주일이면 모두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생각해보고 깨치는 것이 신자재교육의 전부입니다. 그 내용을 어린이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아이들의 첫영성체를 놓고 가르치는 것 모두가 바로 이 교리 전부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어린이가 밀떡을 예수님의 살아있는 몸이라고 알고 말할 수 있음을 교회가 이미 고백하고 세워 놓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리라 봅니다. 어린이에게 데리고 가는 어른의 마음, 주님은 그 어린이를 그 어른은 꿈꿀 수도 없는 하늘 나라의 주인이라 여기셨습니다. 



아이에게 하느님을 알려주는 일, 그 일은 쉽거나 어렵거나 한 기준이 아닙니다. 그들이 살 수있는 천국을 알려주는 일이며 누구보다 먼저 세상에 천국을 만들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이들의 머리에 가만히 손을 얹어 축복해 줄 수 있는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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