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님을 만나고 싶으세요?저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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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1-08-13 | 조회수913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샬롬 샬롬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찿아다녔네.
그이를 찿으려 하였건만 찿아내지 못하였다네.
'나 일어나 성읍을 돌아다니리라. 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찿으리라.'
그이를 찿으려 하였건만 찿아내지 못하였다네.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보았네.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찿았네.
나 그이를 붙잡고 놓지 않았네.
내 어머니의 집으로,
나를 잉태하신 분의 방으로 인도할 때가지."(아가3,1-4)
아가서의 이 애타는 사랑 고백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주간 첫날 아침,아직 어두울 때에 무덤으로 사랑하는 예수님을 찿아가는 마음과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마음이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마음이 저와 같은 죄인도 주님을 뵙는 은총을 누리게 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난 체험 보따리를 어떤 것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뵙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벗들에게,또한 주님의 음성 듣기를 간절히 원하는 벗들에게 저의 체험을 나누어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세례받기 전에 주님의 음성을 먼저 듣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저는 제 멋대로 살다가 어느 날 왜 사는지가 궁금해 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가 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의 죄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늘을 감히 쳐다 보고 다닐 수 없어서 고개를 떨구고 땅만 쳐다보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가수 현미님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왜 사느냐고 누가 묻거든, 못다한 사랑 때문이라고...." 그 순간 번개처럼 저의 눈이 떠졌습니다.
아~! 그거구나! 난 못다한 사랑 때문에 살아야 하는구나!
그리고 내 인생을 돌아 보았습니다.
사랑하지 않았고 그러니 사랑 받지 못한 인생으로 얼마나 비참하게 살았는지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목표를 "사랑하기 위하여"라고 정하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목표만 정해졌지 살지는 못했습니다. 알아야 살지요.
아직 세례받기 전 저는 사랑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돈"이었습니다. 사랑을 위하여 돈이 필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부지런히 그리고 악착같이 돈 벌다가 잃어 버릴 뻔 한것이 있습니다.
아들이 중1때 가출을 한 것입니다.
그 사건은 저의 모든 희망을 절망으로 끌고 갔습니다. 아무리 찿아다녀도 아들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절망을 질질 끌고 집으로 오는 길에 갑자기 "그게 왜 애 탓이니?"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그게 왜 애 탓?"하고 저가 다시 말하니까 "니가 잘 살었어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저가 "니가 잘 살었어봐?"하니까 어머나 세상에 저의 인생이 번개처럼 제 앞을 지나며 보여주더군요. 그 순간 저는 큰 도로변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두 손을 모으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아!하느님! 제가 잘못 살았습니다. 아이 탓이 아니고 제 탓입니다. 오늘 제 아이를 찿아 주시면 하느님 믿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아이를 선택할 것인지 돈을 선택할 것인지 물으셨습니다.
"돈이냐? 아이냐?" 저는 아이입니다 하고 응답했습니다.
어떻게 주님 음성인지 아느냐고 하실 것입니다. 그냥 들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눈먼 이와 귀먹은 이를 많이 고쳐 주셨듯이 저도 주님께 "제 탓이오"했을 때 고쳐 주셨나 봅니다.
그날 밤에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고 저는 약속대로 성당을 찿아가 세례받고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너무 서둘러서 교리 중간에 들어가 아무것도 모른채 세례만 받았으니 이런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지요.
"아니 십자가에 저 예수님이 어떻게 내 죄 때문에 돌아가실 수 있지? 나는 여기 살고 저 분은 이천 년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였는데...
궁금해 하니 그분의 방법으로 성경 공부를 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어느날 본당 성전 입구에 "성서 사십주간"을 한다고 하는데 왠지 저기에 가면 답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시작했습니다. 뭐가 뭔지는 몰라도 성모님께 도와 달라고 하면 될 것 같아서 기도하고 시작하였습니다. 정말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 같았는데 할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읽고 필사도 하고, 말씀을 살아야 한다기에 그렇게 하는 건가보다 하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두 말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12,24)와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10.45)
저는 화가 나면 이 두 말씀을 저에게 들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말씀을 들려 주면 마음에 평화가 생겼습니다. 그러니 더 열심히 그렇게 하였습니다. 말씀이 저를 이겼습니다. 저 자신도 저를 이기지 못했는데 말씀이 저를 이기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그렇게 살던 어느날 아들과 아침에 다투고 화가 나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럴 수 있어?"하며 투덜 거리는데 갑자기 "아니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왜 살리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죽이려는 생각을 하고 살지?"
그 순간 저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아마 이렇게 되기까지 삼 년이 걸렸습니다. 늘 생각이 부정적으로 투덜거리기 잘하고, 화도 잘내고 그러던 저가 한 순간 변화되었습니다. 애쓰니 한 순간 주님께서 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주님의 눈으로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들던 것이 살아보니 너무 쉬웠습니다.
주님과의 체험이 무지 무지 많아서 여기까지 소개하고 정리 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세례 후 가장 먼저 성서공부를 시작했고, 읽기와 필사도 했으며 읽으면서는 처음엔 주님께서 저를 위로하시고 사랑한다는 구절에 형광펜으로 색칠하며 읽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그 말씀을 진짜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성가 1번을 매일 불렀습니다. 주로 나를 위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성가를 적어가지고 다니며 불렀습니다. 그리고 늘 주님 생각을 하려고 애썼습니다. 길 가면서도 "감사 감사 알렐루야!"를 많이 노래하였습니다.
밥 먹을 때도 감사,소변 보고 나서도 감사,대변 보고 나서도 감사, 감사를 달고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저와 같은 죄인을 사랑해 주신다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지금 묵상해 보면 이 감사는 저 혼자 힘으로 한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사는데 가장 원초적인 감사가 잘 먹고 잘 배설해야 하지 않습니까? 만약 먹기만 하고 배설이 안되면 죽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시원해서 "주님 너무 너무 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한 기도였는데 지금은 나를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세례 때 원죄와 본 죄를 다 용서해 주셨다는데 그래서 이제 너는 죄가 없이 깨끗해 졌다는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나의 죄인됨을 깊이 볼 수 있게 해 주시고 그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용서의 체험이 크고 강할수록 주님 사랑이 더 많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만물을 통하여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통하여 나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이웃을 통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하여, 책을 통하여, 노래와 그림을 통하여, 영화나 연극 연속극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곁에는 주님만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제 오른쪽 어깨에는 천사가 왼쪽 어깨에는 사탄이 앉아 있었습니다.
어느날 저는 주인이 있는 껌을 보았습니다. "순간 먹고 싶다."라고 제 의지가 발동하니 "안돼 네 것이 아니잖아"라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괜찮아 그까짖 껌 하난데 뭘그래 먹어도 돼."하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저는 두 소리 앞에서 잠시 생각을 했습니다. 그날 저는 안돼하신 말씀에 응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는 괜찮아에 응답하는 삶을 많이 살았습니다.
천사는 내가 죄를 범할까 걱정되어 빨리 짧게 명령하지만 악한 영은 길게 그럴싸하게 설명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간의 관점은 큰 도둑 작은 도둑 구별을 해서 큰 도둑은 감옥에 가두지만 껌 하나 훔쳐먹은 도둑은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눈으로 보니 "바늘 도둑이나 황소 훔친 도둑이나 똑같은 도둑"이었습니다. 이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삶의 "지혜"를 깨닫게 도와 주시며 살도록 힘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례받고 성서 공부하며 알게 된 것은 우리는 결국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편에 설 것인지 악한 영의 말을 듣고 살 것인지 매 순간 결단하며 살아야 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주님을 알려고 애쓰면 도와 주십니다.
저는 저와 맞는 것을 찿기 위해 신심 기도는 다 다녀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경을 택했습니다.
서울로 가는 길은 수 없이 많습니다. 수단도 많습니다.
자신의 능력과 형편에 맞는 방법과 길을 잘 식별하여 가시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분은 성령 기도회를 통해서, 어느분은 성모 신심을 통해서,교회의 신심 운동을 통하여 ...가장 중요한 미사성제를 통하여 주님께 나아가지요.
그 모든 것의 중심엔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어지지 않아도 믿겠습니다를 입으로 고백하면 어느날 믿고 있더군요.
주님을 체험하는데 특별한 비법이 있지 않습니다.
사도신경을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그리고 나의 신앙 체험과 주님과 약속한 것들을 이웃과 나눔을 많이 하면 좋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웃에게 말한 것들을 살아내려 애쓰는 노력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웃이 내가 어떻게 살겠다고 말한것을 보고 있기에 더 애쓰게 됩니다.
성경 말씀을 주님 말씀이라 믿고 하나씩 살아내는 체험이 주님을 체험하는 길입니다. 저는 강론을 통해서든 책을 통해서든 나눔을 통해서든 저의 삶과 관계되는 말씀은 일단 살아보려 애씁니다. 세상에 성경이 없고,좋은 말씀들이 없고, 좋은 시들이 좋은 영화들이 없어서 우리가 고통스럽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꼭 살아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없어서 힘든 것입니다.
주님께 "사랑을 하고야 말겠으니 도와주십시오"라는 기도가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입니다.
오늘 이 기도를 꼭 봉헌하시고 인생의 목표를 "사랑하기 위하여"로 삼으시는 축복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알렐루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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