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찬미, 기쁨, 희망의 어머니 - 8.1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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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08-15 | 조회수373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2011.8.15 월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 요한 묵11.19ㄱ;12,1-6ㄱ.10ㄱㄴ 1코린15,20-27ㄱ 루카1,39-56
찬미, 기쁨, 희망의 어머니
성모승천대축일만 되면 어려움 중에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또 하나의 성모님인 어머니들이 생각납니다. 오늘 승천하신 성모님은 믿음의 어머니들은 물론 믿는 모든 이들의 희망의 표지입니다.
며칠 전 어느 자매님으로부터의 전화도 잊지 못합니다. “제가 무너지면 집안이 다 무너집니다. 끝까지 무너지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망설이다 전화했습니다.”
계속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매님의 절박한 기도 요청이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머니들도 많을 것입니다. 가정의 어머니가 무너지면 동시에 가정도 무너집니다.
성모님이 믿음으로 가정을 잘 지켰기에 예수님이지 성모님이 시련을 견디지 못해 무너졌더라면 예수님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또 얼마 전 읽은 내용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식구들이 깰까봐 살며시 들어오던 엄마는 “엄마야?”라며 부스스 일어나 눈을 비비며 뒤뚱뒤뚱 걸어 나오는 다섯 살 난 아들에게 속삭입니다. “그래, 엄마다! 엄마 좀 안아 줄래?” 그러면 아들이 “응!”하고는 엄마를 자기의 자그마한 팔로 꼭 안아 준다 합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그야말로 파김치가 된 상태인데, 아들의 그런 기다림과 포옹을 받으면 일순간에 모든 피로가 싹 가신다고 합니다.’
'엄마 좀 안아 줄래?’ 한 마디가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어머니들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합니다. 어머니에게 요구만 했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철부지들에게 경종이 되는 일화입니다.
하느님이 어머니들을 안아 주십니다. 오늘 성모승천대축일이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동정녀 마리아,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도다. 그곳에 왕중의 왕께서, 별빛 찬란한 옥좌에 앉아 계시는 도다.”
평생 시련 중에도 좌절하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의 삶을 사셨던 성모님을 하늘에 올리시어 품에 안으신 하느님을 상징하는 성무일도 후렴 한 구절입니다. 하늘에 올림 받으신 성모님은 믿음의 어머니들은 물론 믿는 모든 이들의 모범이자 희망의 표지입니다.
성모님은 ‘찬미의 사람’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찬미할 때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느님 품 안에서의 휴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경을 견뎌내게 하는 것은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뿐입니다.
찬미와 더불어 고무되는 믿음입니다. 마리아가 영적도반 엘리사벳을 만나 동병상련의 공감 후, 위로와 힘을 받자 저절로 터져 나오는 성모님의 감사의 찬미입니다. 초대교회 가난한 이들이 불렀던 찬미가를 마리아가 대표하여 부릅니다.
마리아는 우리 믿는 이들의 모범입니다. 하여 우리 수도자들은 매일 저녁기도가 끝나갈 무렵 성모님과 함께 우렁차게 성모님의 노래를 부르며 하느님의 승리를 경축합니다. 끊임없이 바치는 하느님 찬미가 전능하신 하느님의 개입을 유도합니다. 우리를 치유하고 운명을 바꿉니다. 부정적 비관적 인생관에서 저절로 긍정적 낙관적 인생관이 됩니다.
성모님이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또 우리 요셉수도원이 온갖 시련 중에도 이렇게 건재할 수 있었던 것도 끊임없이 계속된 하느님 찬미기도 덕분임을 깨닫습니다. 찬미의 사람이라 일컫는 수도승들에게 ‘찬미의 어머니’ 성모님에 대한 사랑은 참 각별합니다.
성모님은 ‘희망의 사람’이었습니다. 희망의 사람들은 결코 어떤 역경 중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성모님뿐 아니라 진정 믿는 이들 모두가 희망의 사람입니다. ‘성모님의 노래’는 온통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모님을 예표 하는 묵시록의 여인 역시 희망으로 빛나는 모습입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는 열 두 개의 별로 된 여인의 관’은 희망으로 빛나는 성모님을 상징합니다.
낮에는 태양처럼, 밤에는 달처럼 빛나는 희망의 어머니요, 열두 지파를, 열 두 제자를 상징하는 열 두 개의 빛나는 희망의 별들로 장식된 성모님입니다.
순탄한 여정 중의 희망이 아닙니다. 밤이 어두울수록 빛나는 별이듯 역경의 어둠 속에 빛나는 희망의 별, 하느님의 별입니다.
크고 붉은 용으로 상징되는 악의 공격은 얼마나 거칠고 집요한지요. 그 와중에서도 ‘희망의 어머니’ 마리아는 쇠 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사내 아이 예수를 낳습니다. 성모님은 물론 하느님께 희망을 둔 모든 이에게 하늘에서 들여오는 승리의 노래입니다.
매주 목요일 성무일도 저녁기도 때 마다 성모님은 물론 그리스도의 승리를 노래하는 우리들입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결정적인 희망의 표지는 부활한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기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승리를 앞당겨 사셨던 희망의 어머니 성모님이요, 우리 또한 이런 그리스도께 대한 희망으로 승리의 삶을 살아갑니다.
성모님은 ‘기쁨의 사람’이었습니다. 기쁨 역시 믿는 이들이 참 표지입니다. 우울이나 슬픔은 믿는 이들의 표지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할 때 무너지지 않습니다. 어둠의 유혹도 스며들지 못합니다.
찬미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희망과 기쁨입니다. 모두 끊임없이 하느님을 찬미할 때 하느님으로부터의 선물이 희망과 기쁨입니다. 하느님은 희망의 샘, 기쁨의 샘입니다.
오늘 성모님과 엘리사벳의 만남은 기쁨 가득한 축복된 만남입니다.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아기와 동시에 기쁨으로 충만한 엘리사벳에 이어 성모님의 환희 가득한 하느님 찬미가 시작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대로 믿고 성모님과 함께 내 고백의 기도로 바칠 때 충만한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교회가 성모승천대축일을 제정 공포한 것은 1950년 11월1일입니다. 세상은 얼마 전에 끝난 1,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또 우리나라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6.25사변 발발로 초토화된 참 절망의 시대였습니다.
도저히 희망을 빛을 찾을 수 없을 때 하늘로부터 짙은 절망의 구름 사이로 희망의 빛살처럼 주어진 선물이 성모승천대축일입니다.
오늘날 역시 양상은 다르지만 절망의 구름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듯합니다.
일제치하에서 해방된 광복절에 맞이하는 성모승천대축일이 참 의미심장합니다. 이미 대한민국의 수호자가 되신 성모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성모님과 함께 당신을 찬미하는 우리 모두를 희망과 기쁨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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