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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르심과 ‘참 나’의 실현 - 8.1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16 조회수325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1.8.16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판관6,11-24ㄱ 마태19,23-30

 

 

 

 

 

 

부르심과 ‘참 나’의 실현

 

 

 

오늘은 ‘부르심(聖召)’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유대인 랍비 여호슈아 헤쉘의 말이 생각납니다.

“나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김 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부르심의 실재를 잘 보여줍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누구나의 간절한 열망이 참 나로 존재하고 싶은 것입니다.

무의미한 존재가 아닌 의미 충만한 존재로 살고 싶은 것이요

주님께 불림 받았을 때 비로소 참 나의 삶이 시작됩니다.

 

나보다도 나를 잘 아는 주님이십니다.

주님께 불림 받아야 참 나의 발견입니다.

 

오늘 판관기의 기드온이 주님께 불림 받지 못했을 때의 좌절로 인한

그 구차한 삶이 다음 묘사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때에 요아스의 아들 기도온은 미디안족의 눈을 피해 밀을 감추려고

  포도확에서 밀 이삭을 떨고 있었다.’

 

아마 주님께 불림 받지 못했다면

우리 역시 평생 이렇게 무의미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가 교회로, 수도생활로 부름 받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고 지낼까요?

지금 이 시간에 이렇게 이 자리에서 미사를 봉헌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기드온보다 기드온을, 나보다 나를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께 불림 받은 기드온과 주님과의 계속된 대화를 통해

서로 간의 이해도 깊어집니다.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주님의 말씀에 지체 없이 자기의 심중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기드온입니다.

 

“지금은 주님께서 저희를 버리셨습니다.

  저희를 미디안의 손아귀에 넘겨 버리셨습니다.”

 

기드온보다 기드온을 잘 아시는 주님은

즉시 기드온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 주십니다.

 

“너의 그 힘을 지니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 족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

 

기드온의 변명입니다.

자기를 모르기에 변명입니다.

 

“보십시오. 저의 씨족은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합니다.

  또 저는 제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입니다.”

 

부름 받았을 때의 공통적인 반응이 이렇습니다.

안주의 욕구와 더불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또 나를 모르기에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가 어렵습니다.

 

다음 주님의 말씀이 결정적 답입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겠다.”

 

바로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한 번의 부르심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시종여일(始終如一), 받은 성소에 충실 하라는

주님께서 주시는 경종의 말씀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의 부르심에 계속 응답하여

매일 새롭게 주님을 따라나서야 합니다.

주님을 따라 나설 때 주님을 닮아 참 나의 실현에 참 행복입니다.

 

이런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고

평생 막연히 자기를 잊고 사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한

부자 청년에 대해 계속되는 내용입니다.

그 많은 재물이 젊은이의 성소를 가로 막았고

참 나의 탐구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라는 주님의 말씀에

놀란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 받을 수 있는가?”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며 부자의 구원 가능성을 열어주십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비록 많은 재물을 소유하더라도

‘재물이 종’이 아닌 ‘재물의 주인’이 되어 살면 구원이라는 것이며,

전능하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런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불림 받아 진정 ‘주님의 종’으로 살 때

‘재물의 주인’이 되어 ‘있으면서 없는 듯이’

무욕의 초연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기드온이 주님을 만나 주님을 위해 평화의 제단을 쌓았듯이,

우리 역시 이 거룩한 평화의 미사 제단을 쌓고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과의 친교를 깊이 하는 복된 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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