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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을 담아서 하라 -반영억라파엘신부-(마태오 20,1-16)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17 조회수557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1 817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오?

내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오? 

(마태오 20,1-16)

 

말씀의 초대

 요탐은 아비멜렉이 임금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에게 우화적 표현으로 연설한다. 우화를 통해 요탐은 왕정 제도가 쓸데없음을 전하며 격렬하게 비판한 다음, 자기 형 아비멜렉을 피하여 브에르로 도망간다(제1독서). 하늘 나라는 부르심을 받은 시각이 아니라 부르심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이른 아침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오후 다섯 시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다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 주님께서는 어느 때이든 부르심에 응답하는 그 자체를 소중히 보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임금이 궁중의 화가에게 물었습니다. “가장 그리기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개와 말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그리기 쉬운 것은 무엇이냐?” “귀신입니다.” 뜻밖의 대답에 이유를 묻자, 화가가 답했습니다. “개와 말은 사람들이 너무 잘 알기에 그리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귀신의 모습은 잘 모르기에 그리기가 쉽습니다.”
개와 말은 흔한 동물이라 볼 기회가 많습니다. 화가가 아무리 잘 그려도 비슷할 뿐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쉽게 시비를 겁니다. 하지만 귀신은 직접 볼 수 없기에 화가가 대충 그려도 사람들은 시비를 걸지 못합니다
.
포도밭 일꾼들은 주인에게 불평합니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불평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을 약속한 주인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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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기준으로 보면 많은 것이 못마땅합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객관화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자신을 주관화하면, 언제나 나만 고생하고’ ‘나만 억울한 것같습니다. 살면서 너무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보다 우리의 삶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

 라일락 꽃 속에 파묻힌 꿀벌은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윽고 원을 그리며 날다가 꿀벌은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역시 꽃 중의 꽃은 라일락이야. 가슴이 떨리도록 향기롭단 말이야.” 이 말을 듣고 있던 나비가 말했습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저 장미꽃을 두고 그런 말을 하다니! 그리고 저 들국화는 어떻고. 꿀벌아, 너는 정말 무얼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아니야. 라일락이 최고란 말이야.” 꿀벌은 결코 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라일락이 무어 그리 대단하다고 그러는 거야. 차라리 채송화가 더 낫겠다.” 나비의 이 말에 꿀벌은 속이 상해 입을 다물었습니다. 기고만장해진 나비가 꿀벌을 재촉하였습니다. “왜 아무 말도 못하니?”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을 더 하겠니?” 꿀벌이 말을 이었습니다. “나비야, 꽃은 겉모양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돼. 라일락은 그윽한 향기를 만들어 내지만 잎을 씹어 보면 얼마나 쓴지 몰라. 쓴맛은 자신에게 남기고 향기는 남에게 주는 아름다운 꽃이 라일락이야.”
이 라일락의 우화는 우리 신앙인의 자세를 되새기게 합니다. 거름을 잘 준 화초가 꽃도 건강하고 열매도 많이 맺는 법입니다. 신앙생활의 거름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끊임없는 기도와 선행입니다. 이는 또한 얼마나 많이 했는지가 아니라, 정성과 열정을 얼마나 기울였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사랑을 담아서 하라

  -반영억라파엘신부-

하느님께서 주신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애정이나 남을 동정하는 마음을 인정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또한 나누며 살아갑니다.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은 따뜻한 마음을 지녀서 인정미 넘치는 사람으로 부르고 어떤 사람은 야박하여 인정머리가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바로 몰인정한 사람입니다. 몰인정한 사람은 세상에는 좋은 것이 많은데 좋지 않은 것을 더 많이 얘기하고 그것으로 마음에 화를 담기도 합니다. 물론 더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꾸만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봐야 될 것을 올바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는 잘하고 있다고 확신을 하고 있는데 남들이 보면 전혀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잘한다고 하는 것이 자기모순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인정 있는 사람이 되어야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포도원 일꾼과 품삯에 대한 비유입니다. 9시, 그리고 12시와 오후 3시, 그리고 오후 5시쯤에 일꾼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일꾼들의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하였습니다. 주인이 품삯을 계산하는데 5시에 온 사람을 먼저 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일찍 와서 일하던 사람들은 약속과 다른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가 무너지자 실망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 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주인이 약속을 어긴 것도 아닌데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힘들어 하는 모습입니다. 그는 정의를 강조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어렵고 힘든 사람이 그 시간에 일해서 당당하게 그 만큼을 벌었다고 한다면 그는 남에게 손을 벌려 동정을 받지 않았기에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절박함에 처한 사람이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정의보다는 사랑이 먼저 입니다. 사랑은 정의를 포용하지만 정의는 결코 사랑을 포용할 수 없습니다. 사실 불평불만도 습관이 됩니다. 그러니 자기에게 주어진 것에서 만족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노력할 것이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불평을 할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후하다고 해서 시기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비에 감사하고 나도 크게 베풀 줄 아는 인정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일을 많이 하고 적게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어떤 정성을 쏟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얼마나’가 아니라 ‘어떻게’가 먼저 입니다. 그러므로 매사를 긍정으로 생각하고 정성을 쏟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늘나라의 관점은 정말, 일의 성과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잘 가꾸어야겠습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하였어도 사랑이 담기지 않으면 적게 일한 것이고, 적게 일한 것처럼 보여도 사랑이 담기면 많은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던지 사랑을 담아서 하기 바랍니다.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마태6,23) 사랑합니다.

 

 < cafe.daum.net/rara63  신을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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