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8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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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현 | 작성일2011-08-18 | 조회수309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2011년 8월 18일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1-1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또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오늘도 하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든 이들이 꿈꾸는 것이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갈 자격도 힘도 없기에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참 행복과 사랑의 나라인 하늘 나라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오늘 예수님은 그런 하늘 나라에 초대된 이들을 통해 하늘 나라를 설명하십니다. 그런데 하늘 나라를 알고 그 나라에 공식적으로 초대된 이들의 모습은 엉뚱하고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그 나라를 너무나 잘 아는 그리고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소원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초대를 앞두고 내민 답은 이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하늘 나라는 분명 열려있고, 그 나라의 혼인잔치의 기쁜 소식에 초대된 모든 이들이 참석하기를 기다리는 임금 앞에 그들은 모두 그 나라를 외면합니다. 임금이 다시금 종들을 보내어 재차 초대함에도 그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결국 임금은 그들을 처벌하고는 잔치집을 채우기 위해 동네 어귀에 보이는 모든 이들을 초대하게 됩니다. 그렇게 전혀 예상치 않은 이들이 가득 들어찬 하늘나라. 하지만 그들 모두가 그 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혼인에 맞는 예복을 입은 이들이라야 그 잔치에 참석할 수있게 됩니다. 하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알고자 하는 이에게 오늘 하늘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하늘 나라가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어떤 곳이 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가 됩니다. 하늘 나라를 이야기하고, 구원, 영원한 생명을 알고 소망하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으로 불림을 받은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이 세상에서 하늘 나라를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천국이란 상상하지 못하는 곳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작 하늘 나라에 초대를 받게 되었을 때 그들이 하늘 나라 잔치의 문이 열려 있고, 상이 차려져 있음에도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면 이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평생을 하느님을 이야기하고 하늘 나라를 말해온 이들인데 정작 그 나라를 향해 가는 발걸음 조차 거절하고, 때로 화를 내며 그들을 하늘 나라로 이끄는 이들을 죽이기까지 한다면 이것은 충격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 당황스런 이야기는 하늘 나라가 사람들에게 처해있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잔치에 가지 않고 밭으로, 장사하러 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 모두가 그들을 구원하신 하느님이라 말하며 제사를 바치던 하느님의 초대에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이 초대에 응하는 대신 하려 했던 것은 그들이 살아가며 선택했던 방식들입니다. 다름 아닌 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것들 대로 향했습니다. 그들에게 하늘 나라가 왜 이리 박해를 받고 거부를 당했을까요? 우리는 하늘 나라에 더 좋은 것이 있다고들 말하곤 하지만 정말 하느님의 나라에서 우리가 가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가진다는 의미가 없고 하느님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 자체가 행복이요 그 모습이 사랑인 삶이 하늘나라의 삶입니다. 그 삶을 가장 잘 나타내는 사건이 혼인 잔치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기적인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흥미롭지 않은 삶입니다. 하느님을 믿지만 그분이 우리를 다른 이들보다 더 잘 살게 해 주시는 것이 신앙의 기쁨이고, 결국 그분을 믿는 것은 그분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 삶을 위해서라면 그분 안에서 사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게 보일리 없습니다. 오히려 그리 살자라고 말하는 이가 어리석어 보이고, 귀찮아보이며 때로는 세상 모르는 이들을 미워하게 될 수 도 있습니다. 결국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진심이 하느님께가 아닌 자신에게 있음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그들이 그토록 많이 외치던 하느님과 구원이라는 가치 앞에서 등을 돌리고 맙니다. 그것이 그들이 사는 진짜 이유였던 셈입니다. 그들이 마련된 잔치를 거부하고 박해하는 사이, 그 하늘 나라는 그 가치를 모르는 이들로 가득하게 됩니다. 전혀 상상하지 못하던 이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서게 됩니다. 기준도 모르겠고 사정도 모를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이미 하느님의 뜻이라는 기준이 있는 나라기에 그 나라에 불림을 받은 이들이라해도 하느님의 기준에서 가려지게 된다고 복음은 이야기를 합니다. 하느님을 아는 이들에게 배척을 받는 하늘 나라, 그래서 예상치 못한 선인과 의인이 살게 된 하늘 나라의 모습은 하느님의 사람들에게 즐거움으로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의 나라 이스라엘에 오셨으나 누구도 하느님의 진실에 따르려 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 때문에 하느님의 은총을 꿈꾸어보지 못한 이들이 하늘 나라에 불림을 받는 현실을 겪으신 예수님의 복잡한 심사가 가득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늘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가르침이 아니라 우리를 보게하시는 예수님의 거울이라 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거울 앞에 선 우리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고 묻고 계십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하느님을 알고 고백하는 이들이라면 예수님의 이야기가 단순히 하느님께 뽑힘을 받을지에 대한 기대보다는 내가 과연 하늘 나라를 원하는 것인지 나 자신 때문에 하느님을 믿고 있는 것인지에 의해 결정될 수 있음을 걱정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을 몰랐으나 삶만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그들이 살아온 모든 삶이 하느님의 가르침에 비춰 얼마나 하느님을 닮아 있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이들은 부르셨으나 스스로가 천국을 버렸고,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은 그들의 삶의 가치로 하느님께 선택을 받습니다. 여기에 머무는 이들은 거의가 하느님을 아는 이들이니, 구원은 오직 하느님 만이 하시는 일이나 그분의 선택의 엄격함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 나라에 모두 불림을 받아 있음을 기억하고 진심으로 그 길을 사는 이야기의 보이지 않는 선한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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