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낫한 스님의 '평화로움'을 읽고
유난히 무더웠고 호우로 인해 얼룩진 고통과 피해도 많았던 여름이 다 지나가기 전, 나는 한 권의 책을 통해 마음의 잔잔한 평화와 얼굴의 은은한 미소를 다시 얻었다. 그 책은 바로 베트남 출신의 스님인 틱낫한의 「평화로움」이다. 틱낫한(Thich Nhat Hanh)은 1926년 베트남 출생으로 16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그는 베트남 전쟁 이후 베트남을 떠나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100여권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이미 1960년대 반전운동을 계기로 1967년 마틴 루터 킹 목사에 의해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대되었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으며 베트남 참여불교(Engaged Buddism)의 맥을 잇고 있다. 틱낫한 스님은 20여년전 프랑스 남부 보르도 지방에 깨달음과 사회참여를 실천하는 불교 공동체, 매화마을(Village des Pruniers)을 설립하였다. 이 곳에는 다양한 국적, 사회 배경을 가진 수행자들이 서로간의 종교, 자연, 인간의 갈등도 없이 조화로운 삶을 관찰하며 지혜를 배우며 살아간다.
틱낫한 스님의 대표적인 저서라고 할 수 있는 ‘평화로움’을 읽으며 나는 스님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말 속에 녹아 있는 삶의 지혜로 다시 한번 내 삶에 대한 깊은 성찰에로 초대되었다. 책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어리거나, 혹은 나이 든 아시아인들의 사진은 나를 점점 더 깊은 신비의 차원으로 인도하였고 난 그 사진 속의 아이들 눈알만큼이나 커다란 가르침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깨우침은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하여 나를 미소짓게 하였다. 결국 이 책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신비스런 힘을 지니고 있는 미소에 대한 이야기이다. 틱낫한은 책의 전반에 걸쳐 왜 미소지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스님은 분명하게 말한다. “한 아이가 미소를 짓는다면, 한 어른이 미소를 짓는다면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날의 삶 속에서 우리가 미소 지을 수 있다면,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다면,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가 영향 받을 것이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이고 진정한 평화 운동이다.”
이 순간을 깊이 명상한다면 세상은 더 없이 미소 지을 만한 곳이다. 누구라도 마음의 평화와 행복에 이를 수 있다.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지만 또한 푸른 하늘, 햇빛, 아이의 눈과 같은 경이로움들도 가득하다. 우리는 삶의 수많은 경이로움을 만나야 한다. 파란 하늘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가?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 특별한 수행을 해야만 하는가? 그렇지 않다. 단지 그것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나날의 삶 속에서 미소 지을 수 있다면,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다면, 우리 자신 뿐 아니라 모든 존재가 그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로부터 벗어나서 천천히 걸으며, 혹은 친구와 차 한 잔을 마시며 미소 지을 수 있다. 그것을 삶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삶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숨을 들이쉬면서, 마음에는 평화
숨을 내쉬면서, 얼굴에는 미소
나는 느낀다, 내가 살아 쉼 쉬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경이로운 순간임을.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살지 못한다. 끝없이 미래로 삶을 미룬다.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은 살아있는 순간이 아니다. 따라서 ‘삶의 기술’이란 다름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살아 숨쉬고 있음을 자각하는 일이다.
틱낫한 스님이 사람들에게 명상을 권유하는 것도 궁극에는 미소짓게 하기 위해서이다. 스님은 숨쉬고 있는 지금이 왜 경이로운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경이로운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살려고 애써 노력한다.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려고 노력한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어쩌면 우리는 전 생애에 걸쳐 단 한번도 살아있는 순간을 경험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슬픔이 몰려왔다. 산길을 걷는 지금 이 순간에, 그릇을 닦는 지금 이 순간들에 온전히 빠져들 수만 있다면 그 만큼 행복할 수 있다는 간단한 이치를 난 어찌하여 그토록 외면하고 살아간단 말인가? 생각은 하면서도 실제의 삶에서는 언제나 다른 무엇이 되기를 애써 노력하는 이 가엾은 인생을 어찌하란 말인가?
틱낫한 스님은 명상이 애써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 애쓰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도와준다고 말한다. 언제나 명상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또 다른 행동을 한다. 만일 우리가 그 명상 시간과 나머지 삶 전체가 하나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두 세계 사이에 아무런 의사소통이 없는 절대적인 차단을 의미한다. 모든 명상, 모든 발걸음, 모든 미소는 우리들 나날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명상 수행은 그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따라서 문제는 얼마나 오래 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바르게 했는가에 달려있다. 만일 바르게 명상했다면 우리는 더 친절해지고, 더 부드러워질 것이다. 더 많은 이해와 사랑을 갖게 될 것이다. 신학교 생활은 시작하면서 스님이 말하는 명상의 시간들을 십년 가까이 수행하고 있다. 우리의 가톨릭 전통에서의 묵상과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 수많은 명상의 시간들이 내 나머지 삶 전체와 하나라는 것을 난 얼마나 뼈저리게 느껴왔던가? 같은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스님의 가르침이 마치 노스님의 죽장처럼 매섭게 내 어깨를 치고 달려든다.
한 권의 책을 통하여 이루어진 틱낫한과의 만남은 결국 나로 하여금 ‘이웃사랑’이라는 주님의 계명을 의미 깊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해 먼저 조용히 성체 앞에 앉게 만든다. 이 가을, 마음에는 평화와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한 채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정진하고자 하는 형제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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