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고해성사의 은총-반영억라파엘신부-(마태오. 16,13-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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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11-08-21 | 조회수510 | 추천수11 | 반대(0) 신고 | |
2011년 8월 21일 연중 제21주일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말씀의 초대 진정한 관리는 주님의 보호이다. 그분의 보호를 받는 사람의 자리는 길이 보전될 것이다. 사람이 주는 권력은 오래가지 않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권력은 영원할 것이다. 사람 눈에 잘 보이려 애쓰지 말고 주님 앞에 의로운 자로 살려고 애써야 한다(제1독서).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깊다. 그분의 판단은 헤아리기 어렵다. 누가 그분의 생각을 알 수 있겠는가? 철저한 신뢰와 믿음만이 그분의 섭리를 깨닫게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여론엔 별 관심이 없으시다. 그분의 관심은 제자들의 믿음이다. 베드로는 정확한 답을 제시한다. 그러기에 스승님께서는 그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맡기신다. 예수님의 깊은 배려다(복음).
고해성사의 은총 -반영억라파엘신부-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 분은 사랑자체 이시기에 한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특별히 세례성사를 통해서 당신 자녀로 불러주셔서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의 연약함으로 잃어버리는 거룩함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고해성사를 통해 우리를 부르시며 끊임없이 영원한 생명에로 초대하십니다. 이 시간 고해성사에 관해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회개에로 인도해 주시고 마음의 상처도 치유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인사를 하면서 당신도 예전에는 성당에 나갔는데 지금은 예수교 나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교 다니니까 고해성사를 보지 않고 하느님과 직접 통하니까 좋더라.’ 하시면서 꼭 신부를 통해서 용서를 청해야 하느냐?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16,19)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20장22절 이하 에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사도들에게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사도들의 후계자가 주교이고 그 주교들의 협력자가 신부입니다. 그리고 신부는 주교의 위임을 받아 사목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해성사를 거부하는 것은 교회를 거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고해성사는 세례성사를 통해 모든 죄를 용서 받은 후에 또다시 범하게 되는 잘못에 대해 용서를 받을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이 성사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마련된 권리의 보장책입니다(차동엽)
오늘 1독서의 말씀을 보면 주 하느님께서는 엘야킴을 불러 특별한 소명을 줍니다. “나는 다윗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 주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라. 나는 그를 말뚝처럼 단단한 곳에 박으리니, 그는 자기 집안에 영광의 왕좌가 되리라.”(이사22,22-23) 하느님께서는 특별히 당신의 사람을 선택하여 당신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사람은 감각적인 존재이고 보이지 않는 마음을 감각으로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당신의 사랑을 느끼도록 해주셨습니다. 용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용서한다.’는 것을 단순히 말해 주는 것보다 그 용서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음의 막연한 소리가 아니라 사제의 음성을 통해 “당신의 죄는 용서 받았습니다.” 라는 선언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이 하느님을 독대하고 싶어 하며 답답해했지만 신약의 백성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혼자서 회개하며 주님께서 용서하실 것이다’ 하는 것보다 고해성사를 통해 받는 은총은 훨씬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고해성사는 단순히 인간에게 고해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함께하는 하느님의 자비에 나를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의 죄를 나의 기억에서 말끔히 씻어버리리라. 네 속을 내 앞에 털어 놓아라”(이사43,25-26).
고해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을 깨끗이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는 선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고해성사는 우리영혼을 깨끗이 만들어 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어,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디도2,14).
이사야서1장18절에는“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어지며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적고 있습니다. 바로 고해성사는 세례은총을 지속시켜 영원한 생명을 살게 해 주십니다. 또한 하느님과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 집니다. 거룩함과 완전함을 유지함으로써 늘 은총의 상태에 머물게 되고 그럼으로써 그분의 귀한 도구가 됩니다.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귀하게 쓰이는 그릇, 곧 거룩하게 되어 주인에게 요긴하게 쓰이고 또 온갖 좋은 일에 쓰이도록 갖추어진 그릇이 될 것입니다.(2티모 2,21).
그리고 고해성사는 교회공동체를 살아나게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도 살려 주지만 용서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얻게 되기 때문에 그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용서를 통해 마음이 거룩해 지는데 그 공동체가, 그 가정이 얼마나 빛나겠습니까?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했던 마음으로 서로를 용서하는 데 거기에 얼마나 큰 기쁨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풍요로움을 잘 받기 위해서 준비가 필요합니다.
1) 성찰을 잘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살펴야지요. 어떻게 잘못했는지?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했는지? 그리고 인정하고, ‘잘못했습니다.’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 ….한 것 같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주 범하는 잘못은 그 원인을 잘 찾아내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세심해서 죄책감에 짓눌려 사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의 거울은 성경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성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면 “남을 해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십시오. 오히려 기회 있는 대로 남에게 이로운 말을 하여 도움을 주고, 듣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십시오.”라는 말씀으로 살펴본다면 남을 흉보거나 험담한 사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침묵한 것도 잘못입니다. 남을 위해 이로운 말을 해 줘야 하는데 이웃에게 관심이 없었다면 그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기쁨을 주는 일을 찾지 못한 것도 잘못입니다. 특별히 입을 조심하지 못한 사항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2)통회(뉘우침); 지은 죄에 대한 마음의 고통이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죄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옷만 찢지 말고 심장을 찢고 너희 하느님 야훼께 돌아오라. 주는 가엾은 모습을 그냥 보지 못하시고 좀처럼 노여워하지도 않으신다. 사랑이 그지없으시어 벌하시다가도 쉬이 뉘우치신다.”(요엘2,13).
3)정개 (결심); 다시는 이탈하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독일 속담에는 “정개의 징검다리를 건너 지옥 문 앞에까지 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는 죄짓지 말아야지’ 하면서 마음을 고쳐먹기만 하고 결심한 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니까 어느새 지옥 문 앞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하고, 남의 탓만 한답니다.
4)고백; 알아낸 잘못을 말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부끄러워 감추는 것 없이 고백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 앞에서 행해지는 성사인 만큼 두려워 말고 주님 앞에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의 횟수, 상황에 대해서 간단명료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남의 죄를 고백합니다. 자기는 잘못이 없는데…. 남에게 탓을 돌리며 변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 죄만 고백하십시오. 고해의 비밀은 2천년 교회의 역사가 보증합니다.
5)보속; 보속은 일종의 영적인 형벌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꼭 이행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미래의 죄에 대해서 보호해 주고 나머지 죄를 치료해 주는 것입니다. 기도와 선행, 충고를 받아들이고 실천함으로써 고해성사를 완성합니다. 물질의 손해를 끼쳤으면 보상해야지요. 가끔 어떤 분들은 잘못에 비해서, 보속이 너무 작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은총입니다. 아무리 큰 잘못에도 그분의 사랑이 있고 그분의 넘치는 자비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용서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에 대한 벌을 생각하지만 주님은 언제나 자비와 사랑으로 용서하십니다. 그러므로 고해성사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죄는 우리를 얽어매고 하느님 사랑의 흐름을 가로막습니다. 또한 죄책감으로 움추러 들게 합니다. 그러나 용서는 자유를 줍니다.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에제36,24-28).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돌보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는 주님의 물음은 당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이라기보다 너희에게 내가 어떤 존재냐고 묻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만큼은 “나에게 있어서 주님은 한 없이 용서해 주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며 고해소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시 한편 읽어드리겠습니다.
고해소를 나오며 -장정애-
참 알 수 없는 당신의 저울 그 한 가슴의 사랑과 수 많은 유다를 한 몫에 매기시더니 오늘 송곳 같은 나의 죄와 성모송 한 번을 같은 추에 두시다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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