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늘의 그물은 빠져 나갈 수 없다 -반영억라파엘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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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11-08-22 | 조회수486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2011년 8월 22일 월요일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1954년 비오 12세 교황은 ‘여왕이신 동정 성 마리아’ 축일을 제정하고 해마다 5월 31일에 지내도록 하였다. 이후 로마 전례력 개정에 따라, 마리아를 천상 영광에 연결시키고자 ’성모 승천 대축일’ 다음 팔일째 되는 날인 8월 22일로 옮겼으며, 축일 이름도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로 바꾸었다. 이날 교회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를 위한 구원의 도구가 되시고, 하늘에 오르시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다스리시는 우리의 모후가 되셨음을 기념한다.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마태오 23,17)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교회에 믿음이 빛을 내는 것을 보고 감사드린다. 바오로 사도는 우상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서서, 주님의 부활을 믿으며 영광 속에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데 게으르지 말라고 당부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을 꾸짖으시며 그들의 삶이 불행한 이유를 말씀하신다. 그것은 위선과 탐욕과 형식에 매여 사람들을 옭아매는 그들의 삶의 태도 때문이다(복음).
‘예물이 중요한가,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 중요한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제단을 두고 한 맹세보다 예물을 두고 한 맹세를 먼저 지키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그들의 위선을 강하게 꾸짖으신다
하늘의 그물은 빠져 나갈 수 없다 -반영억라파엘신부- 거리를 떠돌다 숨지는 노숙인들이 해마다 300명 이상에 이르더니 최근에는 하루에 한 명꼴이랍니다. 통계청 사망자료 분석에 의하면 2005년에 300명, 2006년 325명, 2008년에 319명, 2009년에 357명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강원카지노 주변에서 5년간 25명이 자살하였고 올해만 벌서 5명이 자살을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삶의 질”지표가 경제협력개발기구와 주요20개국이 포함된 39개국 가운데 27위로 하위권으로 나타났습니다. 더더욱 산업구조와 복지, 안전등은 아주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가난하고 고통을 받는 이들을 비롯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은 외면한 채 4대강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퍼부으면서 자만에 빠져있고 정치권은 무상급식이라는 이슈로 많은 시간과 헛돈을 쓰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게 제 충심’이라며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큰 절을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이들의 속을 보시고 뭐라 하실까?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들아!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는 옛 말이 있습니다.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진실이든 그렇지 않든 결과를 낳게 되고 그 결과는 하늘 앞에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법입니다. 제아무리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결코 하늘의 그물은 빠져 나갈 수 없습니다. 지금 잔머리를 굴려도 결국은 진실은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그 피해가 후손에게 넘겨질까 두려울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위선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겉과 속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겉은 화려하고 속은 거짓으로 가득 찼습니다. 자기들은 지키지 않으면서도 남에게는 많은 짐을 지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스승이요, 지도자로 행세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대우한 것 까지는 좋은데 본인들이 그렇게 자처했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한국 정치현실을 보면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준수하라고 강조했지만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제외시켜놓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지키는 가, 아닌가를 감시하는 자리에 자기만은 우뚝 서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그것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위선자’, ‘눈 먼 인도자’ 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율법준수를 말하고 영혼을 구하려고 찾아 나서는 바리사이들의 열성은 중요하지만 행실이 없는 외침은 공허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불행합니다. 덜 중요한 것을 더 중요한 것보다 더 중시하는 오류 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열심에 앞서 껍데기와 알맹이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지니고 살아야겠습니다.
지나친 열심이나 헛된 열성은 오히려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에 가깝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그에 소홀함이 없기를 바랍니다. 즈카르야 예언자는 말합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부를 때에 그들이 듣지 않은 것처럼, 그들이 부를 때에 나도 듣지 않겠다.”(즈카7,13) 주님의 목소리를 거부하는 사람은 아예 주님의 축복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가운데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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