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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와서 보시오 -반영억 라파엘 신부-(요한 1,45-5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24 조회수556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1년 8 24일 수요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분으로, 그를 예수님께 인도한 사람은 필립보 사도였다고 한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인도와 소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요한복음 1장에 등장하는 나타나엘과 동일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는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 1,45-51)

말씀의 초대

요한 묵시록의 예루살렘은 하늘 나라의 한 표현이다. 그곳에는 열두 개의 성문을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성문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성벽에는 열두 개의 기둥이 있는데, 열두 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1독서).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제자로 삼으신다. 먼저 필립보를 선택하시고, 그를 통하여 나타나엘을 부르셨다.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나타나엘은 승복한다. 그의 과거를 알고 계셨다는 말씀이다(복음).

 

 

오늘의 묵상

 

와서 보시오.” 필립보의 권고에 나타나엘은 예수님께로 나아갑니다. 그의 운명이 바뀌는 만남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칭찬하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나타나엘에게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무엇인가를 보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는지요? ‘진실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진실한 마음을 보지 못해도, 주님께서는 보십니다. 나타나엘은 평상시 마음그대로 나아갔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셨던 것입니다.
세상은 진실보다 소유를 선호합니다. 진실한 사람보다 많이 가진 사람을 더 챙깁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헤아리시지만, 우리는 물질을 가늠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으로 돌아서지 않으면 고뇌와 번민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필립보와 나타나엘, 두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삶 전체를 바꾼 것입니다. 예전에는 자신의 뜻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주님 뜻을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평범한 삶이었는데 이제는 고생하는 삶이 된 것입니다. 그분께서 부르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이런 삶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나타나엘은 훗날의 바르톨로메오사도입니다. 진실했기에 주님의 제자가 되신 분입니다.

  

   

와서 보시오

  -반영억 라파엘 신부-

‘백문불여일견’이라 합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뜻입니다. 좋은 것을 보면 그것을 다른 이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필립보는 예수님을 보았고 그래서 나타나엘에게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하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필립보는 다시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하고 거듭 말했습니다. 결국 나타나엘은 필립보의 권고에 따라 발길을 옮겼고 예수님께서 먼저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타나엘은 예수님께 ‘하느님의 아드님이요,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참고로 나타나엘은 “하느님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필립보의 거듭된 권고는 우리에게 주님을 전하는 데 있어서 인내를 가지고 전해야 한다는 깨우침을 줍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 다.’고 했듯이 아무리 뜻이 굳은 사람이라도 여러 번 권고하면 변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먼저 나타나엘을 알아보았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모든 것을 꿰뚫으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주님의 은총은 우리의 이웃을 통해서도 전해집니다. 그러므로 나의 은혜로움을 혼자 누리지 말고 이웃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의 삶의 모범을 통해 주님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믿음으로써 변화된 나의 모습을 이웃이 보게 될 때 주님을 더욱더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나타나엘은“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하였습니다. 자기도 시골출신인 주제에 예수님께서 나자렛출신이라는 사실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아마도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사실 구약성경 어디에서도 나자렛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별 볼일 없는 촌동네에서 위대한 인물이 나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고정관념입니다. 그리고 메시아는 유다 땅 베들레헴 출신이어야 한다.(요한7,42)는 생각입니다. 그러니 베들레헴이 아닌 다른 곳에서 메시아가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은 큰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큰 위로를 받고 기뻐했던 말씀이 너무 좋았기에 그때 묵상 내용을 떠올리려 애쓰다보면 주님과의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손때 묻은 성경을 귀하게 여겨 오래도록 사용하다보면 새로운 체험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밑줄을 그어 놓거나 메모를 한 것이 일시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 안에 갇혀서 성장에 방해가 됩니다. 매여 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의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붑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에게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1,51)하고 하느님의 현존을 보게 되리라는 약속을 해 주셨는데 이는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보게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그리고 매 미사 안에서 모시는 영성체를 통해 주님과의 온전한 일치를 이루고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이론이나 교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게 된 후의 나의 모습을‘와서 보시오’할 수 있기를 청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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