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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826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26 조회수35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1년 8월 26일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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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종들의 처지와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의 비유는 주인과 신랑이 언제든 온다는 확고한 약속된 미래가 있지만 그 때를 전혀 알 수 없다는 긴 기다림 또한 같습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은 주인이 맡긴 일을 통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뉘지만, 오늘 복음의 열 처녀는 준비된 기름 때문에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깨어 기다리라는 동일한 가르침, 오늘은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모습에서 가르침을 찾아 봅니다. 


열 처녀들은 동일한 약속 아래 길을 나섭니다. 그것은 곧 신랑이 온다는 소식입니다. 그런데 그 신랑을 기다리는 길에 함께 나섰지만 이 처녀들은 어리석은 처녀들과 슬기로운 처녀들로 나뉘어 등장합니다. 

그들에게 신랑이 온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변하지 않고, 결국 그 신랑들은 혼인 잔치에 도착을 합니다. 또한 그녀들은 그 약속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등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약속도 같고 조건도 같은 처지입니다. 그러나 처녀들의 슬기로움과 어리석음을 나눈 것은 이 기다림에 대한 준비의 모습이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기름을 가지고 있었고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야기에서 눈여겨 볼 수 있는 것은 신랑 쪽에서 하려는 일은 모두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처녀를 골라 온다든지 신랑의 행선지가 바뀌는 일은 비유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혼인에 대한 약속대로 신랑은 왔고 잔치는 시작됩니다. 


오히려 상황을 엇갈리게 만든 것은 등에 불을 켜 신랑을 맞이하지 못한 처녀들 때문이었습니다. 밤 길에 오는 신랑의 얼굴을 볼수도, 그들에게 이리 오라고 신호를 할 수도 없는 처지의 처녀들은 눈 앞에 분명히 나타난 신랑을 맞이하지 못합니다. 처녀들에게 신랑이 온다는 소리가 들렸을 때, 모든 처녀들은 잠들어 있다가 깨어납니다. 그런데 일어나서 허둥지둥 거리는 처녀들은 이미 준비된 이들과 준비가 안된 이들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리고 준비를 못한 처녀들은 기름을 빌리지도 못하고 스스로 준비하러 신랑의 오는 길에 서 있지 못합니다. 그리고 일이 벌어집니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초대는 모두가 받았고, 그 약속은 확실히 지켜졌습니다. 신랑이 도망을 가거나 길을 돌린 것이 아니라 와서 혼인 잔치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는 다섯 뿐이었습니다. 신랑은 기름을 구하러 간 다섯 처녀의 얼굴을 볼 수 조차 없었습니다.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꾸지람으로 듣기 전에 신랑은 나머지 처녀들을 본 적도 없기에 알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분명 어리석은 다섯 처녀도 신랑을 기다리는 길에 나섰으나 불을 밝혀 신랑을 볼 수도 이끌 수도 없었기에 이것은 모른척이 아니라 사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어리석은 처녀들과 슬기로운 처녀들은 겉으로 보았을 때 티가 나는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그녀들은 모두 혼인하기로 되어 있는 이들이며 신랑은 분명 옵니다. 그래서 그녀들에게는 약속 뿐 아니라 그 길을 밝혀 줄 등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들의 혼인은 분명한 사실로 다가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이 등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등에 불을 밝혀두는 일에 익숙합니다. 등에 불을 붙여 밤길을 밝히고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이 등의 역할이라는 것, 그렇게 신랑의 오는 길을 밝히고 그 신랑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을 이해하고 그 등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이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의 지니고 있는 기름은 신랑이 길을 알게 함은 물론 신랑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렇게 길을 밝혀두는 일로 신랑을 기다릴 줄 압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처녀들에게는 신랑의 약속이 유일한 희망이었고, 그 등은 그 증거로 보입니다. 분명 약속된 혼인이었기에 그것에 대한 환상과 그 예물처럼 주어진 등을 보며 그들은 이미 혼인한 듯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으로 충분한 이 처녀들은 등에 불조차 붙이지 않습니다. 그 등은 그저 자신들을 위한 증거일 뿐 길을 밝히다든지 누군가의 얼굴을 비춰주는 등의 목적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혼인의 등을 가졌다는 것에만 만족하고 자신있어하는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 등을 가진 것으로 자신은 신부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교회에 나와 세례를 받고 하늘나라에 대한 약속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다 이루어진 양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하느님의 일을 하는 이들도 자신에게 맡겨진 직무나 직함을 하느님께 받는 특별함의 은총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 일의 목적대로 자신의 모든 것으로 일하는 것이 그 직무라는 이름의 등의 역할입니다. 

결국 자리에 있으나 그 자리의 역할을 하지 않는 이들이 어리석은 이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화려한 등은 있고, 이 등을 지닌 사람이 혼인을 하게 된다는 굳은 약속만 알고 등을 밝힐 수조차 없는 이들은 이 이야기에서 말하는 준비 역시 주인을 기다리는 종과 같이 맡겨진 일 자체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것과 같음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에 익숙해져야 이 이야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 일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불 한번 조차 켜지 않고 자리를 즐기는 사람은 결국 하느님의 나라가 왔음에도 그분의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어리석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늘 나라 구원의 약속에 초대된 이들, 그리고 약속을 지키러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는 분명 복음 속의 처녀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 손에 든 등을 켜서 그분이 오시는 길을 아주 멀리서부터 인도하여 그분 얼굴을 밝혀 뵐 수 있는 신앙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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