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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혜의 밤 - 침묵속에 살아계신 하느님의 사랑.
작성자유웅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26 조회수429 추천수3 반대(0) 신고

“침묵 속에 살아계신 하느님의 사랑”

              평촌 성당 ‘은혜의 밤’ 피정에서
                   강 요셉 신부님.

-로마서 10,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분의 사랑을 느끼고 깨닫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성체 안에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
하느님의 사랑은 침묵 속에 있다.

우리들은 이 말씀을 마음에 담고
침묵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과 현존을 감지하여야 한다.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들 합니다.
이 때에도 바로 침묵을 바라보면서 하느님의 응답을
찾아내야 합니다.

영적인 침묵으로
나를 감싸주시는 빛을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들은 침묵을 통하여
더 깊은 영성의 빛을 바라보아야 한다.

침묵에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육신의 침묵, 곧 감각의 침묵입니다.

성경말씀을 알고 있어야 하지만
하느님께 집중하고 인내롭게 기다려야 한다.
나의 육이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즉, 눈의 침묵, 귀의 침묵, 혀의 침묵을 지켜야 한다.

이 말씀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
나의 눈을 돌려 보지 않고, 듣지 않을 것이며,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정신의 침묵, 곧 마음의 침묵입니다.

침묵은 분심, 아픔과 미움, 그리고 화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며, 그곳에 마음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유혹을 받으셨지만
그 유혹에 빠져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빵으로
그리고 말씀으로 산다고 하시면서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면서 유혹을 물리치셨던 것입니다.

이는 바로 육신의 침묵과 영적인 침묵 속에서
나타나는 빛을 바라보았기에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은총의 선물입니다.

침묵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조절하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침묵은 어두운 것이 아니라 해야 할 말은 하되
인간적인 양심에서 솟아나는 한 줄기의 빛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가라지의 비유에서

“저희가 그 가라지들을 거두어 낼까요?”하고 묻자,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하시면서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13,28-30참조)

가정에서 말 안 듣는 자녀들을 뽑으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하느님께서 처리하시도록 맡겨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상처, 아픔, 용서, 미움, 분노 등을 뽑아 버리려고 하지 말아야
하고 오직 하느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잘못하다가 밀을 뽑아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안의 아픔을 없애려하지 말고
침묵으로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빛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침묵을 사랑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언어는 바로 침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께 기적을, 능력을, 힘을 보여달라고
청하였으나 오로지 침묵으로 대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침묵은 우리에게 빛으로 대답하고 계십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과 대화하였던 것도
바로 이 침묵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안다 또는 모른다.’고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침묵, 곧 빛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이 빛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유언으로 말씀하신 것은:

첫째, 성채성사로서 ‘받아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하신 것과,

둘째, ‘이분이 너의 어머니이시다.’하신 것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에게 인간의 언어로 ‘엄마, 아빠’를
가르쳐주셨고, 성모님으로부터 우리는 하느님의 언어,
곧 침묵을 배웠던 것입니다.

성령강림으로 사도들에게 내적인 강림, 곧 영적인 강림을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지금의 하느님, 살아계신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울고 웃고 계신 하느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유언으로 주신 두 가지 선물은
바로 성체성사와 성모님을 알아보게 하신 것입니다.

감각과 인성이 침묵을 두려워하고 있기에
우리들은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이 사실을 신뢰하고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곧, 성체성사로서 광야에서 헤매며 배 고품을
‘만나’로 채워주셨습니다.

‘만나’를 성채성사로 알고 지켜야 하는 원칙은,

첫째, ‘하루에 먹을 것만 거두어라!’하신 것처럼 하루에 한번이다.
둘째, ‘빈 그릇을 들고 나와라!’하신 것은 공복 제를 지켜라하신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더 깊게 생각해 보면,

빈 그릇은 군더더기가 없는 그릇을 가리킨다.

우리는 모두가 다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허물을 감추려고 나무 뒤에 숨기려고 한다.

성체성사는 예수님의 빈 그릇,
곧 침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의 고통을, 슬픔을, 외로움을
그리고 아픔을 다 갖고 계셨기에,

성체성사는 예수님의 모든 것을 그대로 우리에게
주시려고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분을 받아 모시는 것이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침묵의 언어를
알아들어야 합니다.

미사를 집전할 때
神父인 나 자신을 침묵 속에서
온전한 제물로 바쳐드려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흠 없는 제물로,
그리고 산 제물로 하느님께 받쳐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언어인
침묵의 언어를 신뢰하면서 침묵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빛을 찾아야 합니다.

사도들은 그 당시 예수님과 함께 있었으며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면서도 예수님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들은 침묵 안에서
하느님을 신뢰하고 찬미하고 감사드리고 사랑을
느껴야만 한다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목숨을 성모님께 맡기셨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성모님을 믿으셨기에
우리들도 성모님을 믿고 신뢰하면서 침묵 속에서
빛을 바라보면서 믿음을 굳혀야 하겠습니다.

침묵을 하느님의 언어로 받아드리고
그 안에서 한 줄기의 빛을 찾고 그 빛으로
하느님의 위로와 사랑을 느끼면서 우리의 삶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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