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1주간 금요일 - 송영진 모세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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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8-26 | 조회수633 | 추천수11 | 반대(0) 신고 |
<연중 제21주간 금요일>(2011. 8. 26. 금)(마태 25,1-13)
<열 처녀의 비유> 8월 26일의 복음 말씀은 마태오복음의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었고, 다섯은 슬기로웠는데, 슬기로운 처녀들은 혼인 잔치에 참석하게 되었고, 어리석은 처녀들은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처녀들이 잘못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신랑이 왔을 때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때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은 기름이 모자라서 사러 갔기 때문입니다. 기름이 없어서가 아니라 모자라서입니다. 등불을 켤 수 있는 기본적인 양은 있었는데, 그 기름이 떨어졌을 때를 대비한 기름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름이 모자라게 된 것은 신랑이 늦게 왔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이 예상했던 시각보다 늦게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신랑이 올 시각을 자기들 마음대로 예상하고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은 것이 바로 그들의 잘못입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신랑이 왔을 때 열 명의 처녀들이 모두 자고 있었는데, 자고 있었던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닌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어리석은 처녀들과 8월 25일의 복음 말씀에 나오는 '못된 종'은 다릅니다. '못된 종'은 악인이었고, 죄를 짓고 있었지만, '어리석은 처녀들'은 지향만큼은 슬기로운 처녀들과 같았고,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기본적인 것은 다 하고 있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주일미사 참례도 잘하고, 십계명도 잘 지키고, 봉헌금도 잘 바치고, 죄가 되는 일과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고, 누가 보아도 죄 안 짓고, 착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부족한 신앙생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다 하는데 의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실 사랑도 의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등 사랑하라, 라는 명령은 예수님께서 계명으로 주신 것입니다. 계명이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살인하지 마라, 라고만 말합니다. 사람을 죽이지만 않으면 십계명을 지킨 것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시대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 것도 살인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와 비슷한 말씀이 마태오복음 24장에 있습니다.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마태 24,38-39)." 타락한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대홍수를 일으키셨는데, 노아 가족 외에는 모두 죽어야만 할 죄인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 예수님의 해석입니다. 노아의 경고를 듣고 노아처럼 배를 만들었거나, 아니면 노아의 방주에 탔다면 모두 살아날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홍수가 닥칠 때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전혀 홍수에 대비하지 않았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라는 말은, 무슨 죄를 짓고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들의 일상생활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대홍수에 대비하지 않고 그냥 살던 대로 일상생활을 살았다는 것이 그들의 잘못입니다. 신랑이 늦게 올 때를 대비해서 충분히 준비해 둔 기름, 노아의 방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랑의 실천, 이 세 가지를 연결해서 생각하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종말에 우리를 살려 줄 노아의 방주이고, 혼인잔치의 입장권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오복음을 보면, '열 처녀의 비유' 다음에 '탈렌트의 비유'가 나오고, 그 뒤에 '최후의 심판' 대목이 나옵니다. 최후의 심판 장면을 보면, 심판 기준이 달랑 하나입니다.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했는가?"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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