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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27 조회수710 추천수1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8월 27일 성녀 모니카 기념일
 
 
 
 ‘Well done, my good and faithful servant.
Since you were faithful in small matters,
I will give you great responsibilities.
Come, share your master’s joy.’
(Mt.25.21)
 
제1독서 1테살 4,9-11
복음 마태 25,14-30

요즘 텔레비전의 방송 중에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인기입니다. 가창력을 인정받은 가수들이 나와서 경연을 벌이는 프로그램으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로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이런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그 모습에 사람들은 때로는 눈물을 또 웃음을 지으면서 이 프로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시간이 되면 어떻게든 보려고 합니다. 만약 볼 수가 없다면, 그때 불렀던 노래만이라도 인터넷을 통해서 다시 들어보곤 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이러한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가 있잖아. 가수들은 자신들이 가수임을 이렇게 스스로 드러내고 있잖아. 그런데 나는 뭐지? 그래, 명연이 너는 뭐니?”

저는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나는 신부다.”

저는 가수가 될 수 없습니다. 노래도 잘 부르지 못하고, 또한 그러한 끼도 전혀 없음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수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저는 ‘나는 신부다’라고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주교님으로부터 성품성사를 받았고, 신부로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수다’에 나오는 가수들처럼 혼신을 다해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게 있어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은 신부로 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것이 제게 주어진 탈렌트입니다. 만약 제게 주어진 탈렌트가 아닌 다른 것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면 어떨까요? 사제서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돈 벌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저의 탈렌트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즉, 자신의 탈렌트를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 나오듯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한 탈렌트를 받은 종만이 주인에게 혼나고 바깥 어두움 속으로 내던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그렇다면 공평하게 모두 다섯 탈렌트를 줄 것이지, 왜 불공평한 분배를 했는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탈렌트라는 돈의 크기가 노동자가 6,000일 동안 받을 임금에 해당한다는 것을 기억할 때 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아무것도 먹지도 쓰지도 않으면서 16년 이상을 벌어들이는 임금인데, 이 정도의 돈으로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핑계를 대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종이 혼나고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탈렌트가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리들은 불충한 종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결코 별 것 아닌 탈렌트를 우리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최고의 탈렌트, 그래서 하느님의 영광을 최대한으로 들어 높일 수 있는 탈렌트를 주셨습니다.

이 탈렌트를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때, 자신 있게 “나는 ***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꿈꿀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존F.케네디).




성소에 대하여

인천교구 신학생들입니다. 너무 적지요?

어제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에, 한 중학생이 지식 검색에 이러한 질문을 올렸더군요.

“신부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이 되려면 공부를 잘 해야 하나요? 또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으면 신부님이 될 수 없나요?”

저는 이 중학생의 질문보다는 이 질문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답변을 했을까가 더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러한 답변을 했더군요.

“신부님이 되는데 공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또한 신부님도 이성문제에 대한 상담을 해주기 위해서, 신부님 되기 전에 연애를 꼭 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올바른 상담을 하는 훌륭한 신부님이 될 수 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공부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학교 들어가서 어려운 공부를 따라가려면 어느 정도의 실력은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성적 때문에 신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훌륭한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연애도 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렇다면 훌륭한 신부가 되기 위해 연애를 하고, 또한 신부되기 전에 연애를 했던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까? 즉, 자신을 위해 한 사람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말도 안 되는 답변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답변에 질문자 채택이라는 메달이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잘못된 답변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잘 구별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 중학생의 답변을 제가 한 번 적어 봅니다.

사제가 되는데 공부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중간 이상은 되어야 제대로 학업에 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제의 생명은 성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학생의 본분이 공부인 만큼 성실성을 보일 만큼의 성적을 보여야 신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제가 되고자 한다면 연애를 해서는 안 됩니다. 경험을 위해서? 자신의 경험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킨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사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사는 삶 즉 하느님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남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사제될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The Future Is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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