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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조적 일탈(逸脫)의 자유로운 삶 - 8.2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28 조회수433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1.8.28 연중 제22주일

예레20,7-9 로마12,1-2 마태16,21-27

 

 

 

 

 

창조적 일탈(逸脫)의 자유로운 삶

 

 

 

세상에 창조적 일탈의 자유를 꿈꾸지 않을 자 누구이겠습니까?

하늘을 보면 마음은 훨훨 날아 흰 구름 되고 싶지 않을 자 누구이겠습니까?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가 창조적 일탈의 자유를 살게 합니다.

 

찬미의 기쁨으로 사는 여기 수도승들이요 바야흐로 찬미의 계절, 가을입니다.

높고 푸른 하늘에 흰 구름, 빛나는 별 등

온 누리가 서서히 하느님 찬미로 물결치고 있습니다.

상대적 가치가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도

절대적 가치, 하느님을 찾아야 창조적 일탈의 자유요

이래서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입니다.

 

새벽 푸른 하늘, 빛나는 별들에 떠오른 다음 시편입니다.

 

“우러러 당신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당신 손가락의 작품들을

  당신께서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8,4-5).

 

마음의 눈만 열리면 온통 찬미와 감사의 대상 가득한 경이로운 세상입니다.

자주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며 절대적 가치인 하느님을

내 삶의 중심에 둬야 창조적 일탈의 자유입니다.

창조적 일탈의 자유를 꿈꾸며 써놓은,

수도원 봉사자 방에 걸려있는, 12년 전 자작시를 나눕니다.

 

 

“나 이런 이를 알고 있다.

  밤하늘/초롱초롱한 별빛 영혼으로/사는 이

  푸른 하늘 흰 구름 되어/임의 품 안에/노니는 이

  떠오르는 태양/황홀한 사랑 동녘 향해/마냥 걷다/사라진 이

  첫 눈 내린 하얀 길/마냥 걷다가 사라져/하얀 그리움이 된 이

  나 이런 이를 알고 있다.”(1999.2.28).

 

혼란하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이렇게 하느님을 찾아

창조적 일탈의 ‘참 나’의 자유를 살 때 행복합니다.

이런 창조적 일탈의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십시오.

 

창조적 일탈의 자유를 사는 첫 걸음입니다.

하느님을 잊어 방황이요 상대적 가치 속에 매몰되어

영혼을 잊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내 목숨 같은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을 잃으면 저절로 내 영혼도 잃습니다.

 

하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첫 계명을 주신 주님이십니다.

저는 오늘 1독서에서도 예레미야의 불타는 하느님 사랑을 공감했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

 

사랑하니까 꾐에 넘어간 예레미야입니다.

하느님 원망이기보다는 투정에, 넋두리 같이 느껴집니다.

주님의 말씀이 날마다 치욕과 비웃음거리가 되자

하느님을 떠나자 마음먹지만

예레미야의 내면에서 거세게 치솟는

하느님 사랑의 불길은 도저히 끌 수 없습니다.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오, 주님,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합니다.”

 

이게 바로 예레미야는 물론 주님께 불림 받은 우리의 성소이자 운명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우리의 운명이요 팔자입니다.

오늘은 어제 모니카 성녀 축일에 이어

그 아드님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축일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다음 하느님 사랑의 고백이 감동적입니다.

 

“늦게야 임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내 안에 임이 계시거늘 나는 밖에서 임을 찾아

  당신의 아리따운 피조물 속으로 더러운 몸을 쑤셔 넣었사오니!

  임은 나와 같이 계시건만 나는 임과 같이 아니 있었나이다.”

하느님을, 그리스도를 사랑하십시오.

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할 때

창조적, 생산적 일탈의 자유입니다.

이 하느님 사랑 말고는

세상 그 무엇도 우리에게 진정한 일탈의 자유를 주지 못합니다.

 

 

 

현세에 동화되지 마십시오.

 

세상에 살아도 세상에 속한 우리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하늘의 시민인 우리들입니다.

세상에 동화되거나 속화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은총으로 세상을 성화시키고 변화시켜야 합니다.

세상의 변화에 앞서 내 자신의 변화가 우선입니다.

고맙게도 사도 바오로가 내적변화의 요체를 보여줍니다.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이래서 이 미사가 감사하기 한이 없습니다.

우리의 전부를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는 합당한 미사 예배의 은총이

우리를 현세에 동화되지 않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주님을 닮은 모습으로 변화시킵니다.

 

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합니다.

 

하느님 사랑이 우리를 현세에 동화되지 않게 하고,

하느님 사랑의 이 거룩한 미사 예배의 은총이 더욱 우리를 성화시켜

창조적 일탈의 자유를 살게 합니다.

 

어제 모니카 성녀 축일에 읽은 성녀가

아드님 아우구스티노 성인에게 한 감동적인 고백을 소개합니다.

 

“아들아, 내게 있어선 세상 낙이라곤 이제 아무 것도 없다.

  현세의 희망이 다 채워졌는데 다시 더 할 것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네가 세속의 행복을 끊고, 주님의 종이 된 것을 보게 되니

  그럼 내 할 일이 무엇이겠느냐?

  … 내 몸 뚱이야 어디다 묻든지 그 일로 해서 조금도 걱정을 말거라.

  한 가지만 너에게 부탁한다.

  네가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서 날 기억해 다오.”

 

유언 같은 이 말이 천 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영원한 감동입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 모전자전입니다.

두 분 다 평생 절대적 가치인

하느님을 찾아 창조적 일탈의 자유를 사셨던 성인들이셨습니다.

 

 

주님을 따르십시오.

 

주님을 따를 때 진정 창조적 일탈의 자유입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방향이자 의미이자 목표입니다.

날마다 평생 시종여일하게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막연히 따르는 게 아니라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길 말고는 부활의 생명에 이르는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모으고 쌓고 채우는 삶이 아니라

날마다 안팎으로 자신을 비우고 버리고 떠나는 삶

이게 우리 믿는 이들의 수행입니다.

 

억지로, 마지못해가 아닌 주님 사랑에서 샘솟는

자발적 비움과 버림과 떠남입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주님 때문에 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목숨을 얻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버리고 떠나는 일이 바로 제 목숨을 얻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비울 때 주님의 은총이 우리를 가득 채웁니다.

이 샘솟는 주님의 은총이 자발적으로, 기쁘게 제 운명의 십자가를,

책임의 십자가를 지게 합니다.

자신을 버리지 않고, 제 십자가를 지지 않고

사람이 될 수 있는 길도 없습니다.

 

세상 곳곳에서 이렇게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주님을 따르는 순교적 삶을 사는 이들이 바로 성인입니다.

 

이런 삶으로 불림 받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넘어지는 게 죄가 아니라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게 죄입니다.

순탄대로의 십자가의 길은 없습니다.

천둥 번개의 날이 있는가 하면 쾌청한 날도 있습니다.

개인이나 공동생활이나 똑같습니다.

 

주변 환경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제 십자가의 길에 항구 하는 것이 구원의 지름길입니다.

멋지게 주님을 고백함으로 주님께 극찬과 더불어 축복을 받은

반석(the Rock)같은 베드로가

졸지에 사탄의 걸림돌(a stumbling stone)이 되어 넘어지니

이게 사람이요 우리 모두의 가능성입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주님의 천둥 같은 꾸지람에 벌떡 일어나

다시 제정신으로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에 항구함으로

마침내 교회의 반석이 되신 주님의 수제자 사도 베드로입니다.

 

 

 

창조적 일탈의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습니까?

 

오늘 연중 제22주일날, 주님께서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십시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십시오.

 

현세에 동화되지 마십시오.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주님을 따르십시오.

 

항구히 자신을 비우고 제 십자가를 지고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주님을 따르십시오.

 

 

주님은 거룩한 미사 예배 중,

우리의 몸과 맘 전부를 당신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봉헌하는

우리 모두에게 창조적 일탈의 풍요로운 자유를 선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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