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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829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28 조회수309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8월 29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7-29

그때에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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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항상 옳고 바르기만 합니다. 흠이라곤 없는 그래서 말씀 자체로 법이 되어 버리는 완전 무결한 선함이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 하느님의 말씀을 삶의 방법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모든 신앙인들입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어디에서나 무슨 일에나 영향을 미칩니다. 하느님에게서 난 세상과 사람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이들에겐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느님의 말씀이 항상 지켜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선하게만 살면 숨이 막힐 것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사람은 원래 부족한 존재라서 그 선함을 다 지키지는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들은 누구도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완전하신 하느님 앞에 우리는 분명 부족하고 흠도 티도 죄도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부족함에 대한 고백이 우리 잘못을 당연한 일로 변명하는 수단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잘못에 대해 이 말을 자주 사용하며 넘어가려 합니다. 우리에겐 하느님이 주신 고해성사의 소중한 기회가 있지만 간혹 우리는 고해소 앞에서조차 이 실수를 인정하는 일에 주저하곤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하다 어이없이 목숨을 잃게 된 세례자 요한을 봅니다. 

우리는 그의 죽음을 순교라 부르지만 이 죽음은 어딘가 개운치 않습니다. 그가 하느님 말씀을 주장하다 옥에 갇힌 것은 맞으나 그를 실제 죽음으로 내몬 것은 그를 존경까지 했던 헤로데 왕이었습니다.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자신의 의지를 꺽더라도 미워하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세례자 요한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곧 법과 같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세례자 요한을 죽게 합니다.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로 직접 죽일 것을 지시하게 됩니다. 그의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를 움직인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원한 그의 아내, 그리고 그 아내의 바람을 대신 일러준 소녀의 요청에 헤로데는 감옥에 가두었던 세례자 요한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싫어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 순교로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과 그 과정이 너무 많이 닮아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내어 준 것은 빌라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는 예수님과의 면담에서 분명 예수님의 무죄하심을 알았고 두려워했으며 가벼운 처벌과 함께 놓아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피해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으니 그의 황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헤로디아였습니다. 그녀는 세례자 요한에게 질타를 받았던  헤로데의 잘못의 절반인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헤로데의 약속을 이용했습니다. 그가 뱉은 말에 대한 책임에 따른 그의 위신이 세례자 요한 보다 강했기에 그는 원치 않은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 몬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로마의 총독이었던 빌라도는 식민지 백성의 청을 그의 황제에 대한 충성 때문에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판단도 황제의 부하로서의 위신을 넘지 못했던 것입니다. 빌라도 역시 물에 손을  씻었지만 결국 그의 말 마디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게 됩니다. 


그렇게 세례자 요한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예수님은 모두가 보는 곳에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앞에 선 우리는 늘 부족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부족함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대신에 다른 가치로 하느님을 섬기며 살다보면 언젠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지적을 받을 때 그것으로 원한을 품게 됩니다. 헤로디아나 이스라엘 백성의 원로들과 바리사이들, 율법학자들이 바로 그 좋은 예가 됩니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하느님의 법과 질서가 틀려서 그분을 미워하게 된다면 그 이유는 하느님의 뜻보다 자신의 이익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 이야기는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욱 잔인하게 모든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하느님을 저버리는 일까지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저 한 사람의 비극적인 운명인듯 보이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보여주는 이야기이며, 우리가 하느님께 저지를 수 있는 커다란 잘못의 이유를 설명하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자체가 나빠서 미워서 죄를 짓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잘못에 대한 변심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비극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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