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의 목을 또 베시렵니까?
(필자가 묵상한 구절을 중심으로 싣습니다.)
그때에 17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 21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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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복음은 섬뜩하다 못해 등골이 오싹해진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세례자 요한의 장엄한 죽음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는 한때 엘리사벳의 태중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나 뵙고 기뻐 뛰놀았으며, 자라서는 거친 낙타 털옷을 입고 들꿀을 먹으며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서, 하느님의 어린양이 오시는 길을 곧게 하신 분이다. 이다지도 위대한 사명을 띠고 오신 분의 생애가 한 여자의 음모와 헤로데 왕의 우유부단함으로 끝나고 만다.
세례자 요한의 수난을 기념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일 내가 그 시대의 헤로데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과연 철딱서니 없는 어린 딸이 하는 이야기라 여기며 딱 잘라 거절하고 잘 달래서 돌려보낼 수 있었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앙을 통해서 무엇이 하느님의 뜻에 가까운 것인지, 더욱이 그분의 뜻이 분명해진 순간조차도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느라 몸을 사려왔던 과거를 돌아보면 ‘아! 나 또한 수도 없이 세례자 요한의 목을 쳐왔구나.’라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때 주님의 뜻을 저버리고 구하고자 했던 것이 참으로 덧없는 것이었음을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깊이 반성하게 된다.
주일학교 꼬맹이 시절, 고해성사를 하면서 하트 모양으로 만든 성심에 못을 꽂아 넣은 기억이 있다. 우리가 짓는 죄가 바로 주님의 마음에 못을 박는 행위라는 것이다. 오늘은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고 싶다. 우리가 세례를 받고서도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결국 세례자 요한과 같은 의인을 다시금 옥에서 끌어내어 그의 목을 치는 것이라고 말이다.
김기영 신부(부산교구 해외선교: 일본 히로시마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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