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의 별" - 8.2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
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08-29 | 조회수363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11.8.29 월요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예레1,17-19 마태6,17-29
"하느님의 별"
하느님의 별 같은 예언자들입니다. 교회의 하늘을 환히 밝히는 하느님의 별이 성인이요 예언자요 순교자입니다. 밤하늘에 별이 없고, 교회의 하늘에 하느님의 별인 성인들이 없다면 그 밤하늘은, 교회의 하늘은 얼마나 어둡고 삭막하겠는지요.
밝아오는 여명과 함께 사라지는 별을 보는 순간, ‘아, 별은 죽는 게 아니라 사라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차 대전의 영웅인 맥아더 장군의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는 말도 떠올랐습니다.
하느님의 별인 성인들 역시 죽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빛 속으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에녹의 승천의 근거가 되는, 토마스 머튼이 서품 상본에 넣은, 제가 좋아하는 구절(창세5,24)도 생각이 났습니다.
“에녹은 365년을 살았다.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이 그를 데려간 것이다.”(창세5,23-24).
365년을 365일로 바꾼다면, 1년은 365일 평생을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진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의 별 같은 존재인 에녹임을 봅니다.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은 마치 칠흑 같은 악의 어둔 하늘에 하느님의 별같이 빛나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세속의 눈으로 볼 때 탐낼 것은 하나도 지니지 못한, 보기는 멋져 보여도 살기는 정말 힘든 모습의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에 따라 붙는 호칭이 -금욕가, 순교자, 은수자들의 아버지, 마지막 예언자, 그리스도의 선구자 등- 그의 하느님의 별 같은 존재의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 수도자들 역시 세례자 요한과 흡사한 면이 있습니다. 세속의 눈으로 보기에 탐낼 것 하나도 구비하지 못한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하늘나라를 알리는 예언자적 삶에 충실하면서 죽을 때 까지 그 자리에서 정주의 순교적 삶을 사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예언자의 삶과 순교자의 삶이 하나로 연결됨을 봅니다.
세례자 요한이나 예레미야에서 하느님을 빼버리면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무력하고 불쌍한 존재이듯 우리 수도승들 역시 그러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하느님의 일’인 기도에 전념하는 ‘하느님의 사람’인 우리 수도승들에게 세례자 요한이나 예레미야처럼 하느님은 우리의 모두요 존재이유임을 깨닫습니다.
어둔 세상을 밝히며 살아가는 하느님의 별인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레미야 예언자처럼 우리 수도승들은 물론 믿는 모든 이들 역시 하느님의 별 같은 존재들입니다. 하느님이 이들의 힘과 빛이 되어주십니다. 다음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은 바로 주님의 예언직에 참여하여 순교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희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겠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안팎의 어둠의 세력들과 맞설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이 우리의 든든한 백입니다.
주님은 매일 미사를 통해 우리를 당신의 힘으로 충전시켜 주시어 허리를 동여매고 다시 일어나 하루의 영적전투를 시작하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10).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