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1년 가해 연중 22주간 금요일 - 신비의 그릇
탈무드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매우 총명하지만 얼굴이 못생긴 랍비가 로마 황제의 왕비와 만났습니다. 왕비는 “뛰어난 총명이 저런 못생긴 그릇 속에 들어있군!”하고 말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랍비는 왕비에게 “이 왕궁 안에 술이 어디 들어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왕비는 “아마 항아리에 들어있겠죠”라고 대답했습니다. 랍비는 놀라며 “아니 궁궐에는 금과 은그릇이 많을 텐데 어찌 흙으로 만든 항아리에 두십니까?”라고 하자, 왕비는 “그래, 당장 술을 금 항아리에 채워 넣어라”하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금 항아리에 넣었던 술의 맛이 모두 변해서 마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왕은 어리석은 일을 한 왕비에게 매우 화를 내었고 왕비는 랍비에게 왜 그런 일을 권했는지 따졌습니다. 랍비는 “나는 단지 왕비님께 귀중한 것이라 할지라도 싸구려 항아리에 넣어두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한동안 운동을 할 기회가 없어서 몸이 근질근질 할 때에 조기축구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다른 팀과 경기를 하려 하는데 선수가 부족하여 같이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고맙기도 하고 또 가장 젊기도 하기에 열심히 뛸 결심을 하였습니다. 저도 공 좀 찬다는 사람들 축에 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운동장에 도착하여 포지션을 정하는데 제가 가장 젊다고 골키퍼를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크게 실망스러웠습니다. 처음부터 운동장에서 뛰는 줄 알았었고, 또 골키퍼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능력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원망스러웠지만 어차피 하는 것 열심히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실수로 우리 팀은 대패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저도 모르게 자꾸 앞으로 앞으로 나오다가 만세골로 몇 골을 먹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만세골이란 손을 높이 올려도 닿지 않게 손 위로 넘어가는 골입니다. 골키퍼이면서도 운동장이 그리웠던 것입니다. 물론 어른들은 저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를 골키퍼를 시킨 것은 그분들 탓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무엇이든 있어야 할 장소가 따로 있습니다. 만약 묵주나 십자가와 같은 성물들을 신발장에 넣어둔다면 그 사람은 그 성물들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가치를 알아야만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적재적소에 물건을 두기 위해서는 그 물건이 어디에 있을 때 가장 적당하고 그 값어치를 하게 되는지 잘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그런 능력을 갖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이 단식하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단식하지 않고 먹고 마시기만 하느냐고 따집니다. 다른 경우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거나 또 안식일에 곡식을 비벼서 먹는 것을 보고 왜 안식일을 어기냐고 따지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물론 단식은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것을 거부하시지는 않습니다. 제자들이 강한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는 이유를 묻자 그런 마귀들은 기도와 단식 아니면 쫓아낼 수 없다고 하십니다. 또한 당신의 제자들도 당신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라 하십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랑과 함께 있으니 잔치 중이라는 것입니다. 잔치에서 먹고 마시지 않으면 그 잔치에 대한 무례를 범하는 것입니다. 혼인잔치에서 단식이 좋은 것이니 단식을 하라고 하는 것은 시간과 장소에 맞지 않는 요구입니다. 이런 경우가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내어 헌 옷을 깁는 것이고 새 포도주를 헌 부대에 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새 옷도 헌 옷도, 새 포도주도 헌 부대도 다 버리게 됩니다. 새 천은 새 옷을 깁는데 맞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 맞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새 천 조각이고 새 술입니다. 그들이 붙어있어야 하는 곳이 그리스도이고 넣어져 있어야 하는 곳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아버지 안에 계시기에 세상 모든 법을 초월하는 것처럼 제자들도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그 이전 오래된 법들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하느님보고 왜 밥 세끼를 먹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세상이 추구하는 법들을 초월합니다. 세상은 주일에 놀지 않고 미사에 참례하고 돈을 쓰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돈을 갚지 않는 사람을 용서하는 우리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의 법을 따름으로써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가치를 갖는 사람들입니다. 그 그릇 안에 있는 술만이 천상의 맛을 지니게 되고 천상에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더 신비한 의미를 지닙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신랑에 비유하는 것은 교회와의 혼인관계를 말씀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혼인관계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고 나도 아버지 안에 있다”라고 하신 것에서 잘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새 천 조각으로 또 새 술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기도 합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성모님 태중에 잉태되셨던 것처럼 우리도 성체를 영함으로써 그 분을 담는 그릇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도 새 천 조각이고 새 술이 되십니다. 그렇게 나의 그릇 안에 담겨져 하나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모님 안에 계시고 성모님도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둘 중 누구도 그 본래의 가치를 잃지 않게 한 몸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모님처럼 깨끗한 그릇이 되지 못하기에 그리스도는 성체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도 그 가치가 온전하게 보존되지 못하고 변질되게 됩니다.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는 조금씩 변질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길은 성모님처럼 깨끗하여져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셔도 변질되지 않는 신비로운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그 때야만 온전히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세상의 모든 법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아주 특별한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