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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월4일 야곱의 우물- 마태 18,15-20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04 조회수389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17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다. 20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제 형제 안에서 저의 잘못을 볼 수 있도록 제 눈을 열어주소서.

세밀한 독서(Lectio)
마태오복음서에 수록된 다섯 가지 설교 가운데 네 번째인 18장은 공동체의 설교를 담고 있습니다. 신앙공동체 안에도 선과 악이 공존하며 우리 삶과 신앙을 위협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13,24­30 참조) 교회는 공동체 내의 악을 제거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형제를 잃어버리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세 단계에 이르는 형제적 교정(16­18절)과 공동체 기도(19­20절)를 교회 공동체의 규범으로 제시합니다. ‘되찾은 양의 비유’(12­14절)와 ‘형제의 죄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21­22절)는 말씀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오늘 복음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그를 용서하고 공동체와 화해시킬 것인지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하겠습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우선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야” 합니다.(15ㄱ절) 이는 그의 잘못에 대한 질책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잘못을 환기시켜 회개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 형제가 잘못을 뉘우친다면 잃었던 양을 되찾듯이 형제를 얻게 됩니다.(15ㄴ절) ‘얻는다’는 것은 형제의 신앙이나 개인적 우정의 회복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떠나려 했거나 제명당할 처지의 교우를 공동체에 다시 받아들이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충고를 듣지 않을 때,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권고 합니다.(16ㄱ절) 이는 신명 19,15에 준해서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지어야 한다.’는 규범과 1세기 유다교와 그리스도교회에서 송사를 할 때 적어도 두 명의 증인을 채택하던 관례를 따르는 것입니다.(사도 6,13; 1티모 5,19)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마태 18,17ㄱ)는 그리스어 동사는 ‘무시한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따라서 그 형제가 증인들 앞에서도 충고를 무시할 때 그 문제를 ‘교회 공동체에 알리는’ 것입니다. “교회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거든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라고 합니다.(17ㄴ절) 선민사상이 확고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7,6; 15,26 참조)과 자국민의 세금을 거두어 로마에 상납하는 세리들을 죄인으로 여겨 백안시했습니다.(9,11)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계명과 교회의 훈계마저 거부하는 형제는 더 이상 관여할 것이 없다는 것으로, 결국 파문이라는 단호한 결정을 내리는 단계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회개하지 않는 자를 파문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맺거나 푸는 권한’을 베드로에게 주신 데 기인하는 것이며(16,19), “너희에게 말한다.”(18ㄱ절)는 것은 지역 교회에도 그 권한이 부여되었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비록 회개하지 않는 형제가 있다 해도 교회는 죄인의 구원을 위해 계속 관심을 기울이고 보살펴야 합니다. 용서는 죄인의 회개를 전제로 한 선택이 아니라 사랑에 기초한 그리스도인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악인이 악한 길을 버리도록 충고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임을 명시합니다.(33,7­9 참조) 또한 바오로 사도는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로마 13,8)라는 말씀으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의무를 채우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형제를 파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죄를 지은 형제를 법적으로 엄격하게 처리하기 보다 형제의 회개를 위해 하느님의 도움을 간청하는 기도를 병행하도록 권고합니다.(19절) 여기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마음을 모아 청하는’ 기도는 유일한 모임인 “교회”(17절)에 결속되어 봉헌하는 공동체의 기도를 뜻합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상 종말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고(28,20), 특별히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장소에 현존하시어 죄인들과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을 하느님과 일치시켜 주실 것입니다.(20절) 이처럼 공동체가 죄인의 회개와 기도의 응답을 구할 때, 역설적으로 죄인들은 교회 공동체를 그리스도와 일치시키고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따라서 교회는 의인들과 죄인들이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는 친교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사도 2,42; 1코린 10,16 참조)

묵상(Meditatio)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지었을 때’, 저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되짚어 봅니다. 공동체에서 잘못한 어떤 한 사람을 죄인이라고 낙인찍기 이전에 진심으로 그를 하느님 안에 자매와 형제로 인정하며 받아들이고 있었는가? 오히려 늦추어지는 공동체의 처벌에 못마땅해하고, 형제자매를 단호하게 마음으로 잘라내며, 싸늘한 태도로 그의 마음을 더욱 무디게 하지는 않았던가? 그를 질책하기보다 오히려 형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 자신이 공동체 안에서 회개하지 못하는 더 완고한 죄인이라는 생각을 한번쯤은 해보았던가? 그랬더라면 형제자매에 대한 어떤 판단과 행동을 취하기 전에 참으로 그와 공동체 그리고 저 자신을 위한 회개의 기도를 진심으로 하지 않았을까 깊이 묵상해 봅니다.

기도(Oratio)
주님, 제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소서. 제가 당신의 진실 안에 걸으오리다.(시편 86,11)

 

반명순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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