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된 영성.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8,34)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고통 받는 이를 위로하려는 말씀으로 해석하여
너무도 경솔히 자주 입에 올리곤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이 십자가 추종에의 권고는 잘못 해석되어
오히려 그릇된 영성으로 이끌 수 있다.
또 잘못된 영성으로
고통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며,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이라는 신비설도
나오고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와 결혼하여 사는 부인에게
“인내 많으신 부인,
이 고통은 부인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당신의 이 십자가를 기쁘게 짊어지도록 하십시오.”
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온당치 않을 뿐 아니라
하느님한테도 억지가 된다.
그 부인은 인내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알코올에 중독된 남편이,
그 병에서 벗어나도록 금주협회에 들거나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먼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하고 나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결시켜야 한다.
어떠한 경우든
십자가만을 우선으로 여기고,
노력은 소홀히 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고통이라는 걸림돌”
오늘의 묵상 :
고통을 그 고통 안에서 참고 견디는 것과
그 고통을 하느님께 맡기고 주님께서 해결해
주시리라는 것을 굳게 신뢰하며,
고통의 늪에서 빠져나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참고 기다리는 것은 마치 역할 분담으로
그 아픔의 정도가 사뭇 다르다.
고통에도 사람으로서 극복할 수 있는, 곧 노력하여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욕심의 억제, 소비 억제, 금주,
불만의 제거, 그리고 미움에서 벗어나기 등으로 자제와
극기로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있고,
인간이 자기의 수단과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도
극복할 수 없는 필연적 고통이 있기 마련입니다.
도저히 넘어 갈 수 없는 한계에 부닥쳤다거나
능력 부족으로 목표를 달성 할 수 없는 것 등으로,
하느님의 자비만을 기대하는 경우에 오로지 하느님께
의탁하는 도리 밖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주님께서 수호천사들을 보내시어,
제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이 일을
주님께 맡기오니 당신 뜻에 따라 이루어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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