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가해 연중 23주간 금요일-제자를 사랑해야 올바른 스승
1차 대전 후 처칠(1874-1965)은 대독강경책을 인정받아 연립내각의 수상이 되었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냄으로써 국민적인 영웅으로 부상했습니다.
영국에서 그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런던의 한 신문이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처칠을 가르쳤던 교사·교수들을 취재, ‘위인을 만든 스승들’이란 제목으로 보도해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기사를 본 처칠은 신문사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귀 신문의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스승 한 분이 빠졌습니다. 그분은 나의 어머니입니다.”
저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가장 큰 스승은 어머니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머니는 좋지 않은 여건에서 자라셔서 공부도 제대로 못 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 저에게 가르쳤던 몇 가지는 제 삶의 버팀목들이 되었습니다.
먼저 어머니의 가장 큰 가르침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거짓말하는 사람이 가장 싫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입에서 거짓이 나오지 않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니 거짓말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나를 믿지 못하게 만들고 나도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만들며, 결국 하느님도 믿지 못하게 하는 아주 안 좋은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저의 솔직함이 제 주위에 사람이 많게 했고 또 하느님을 쉽게 믿을 수 있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열 살이 되던 생일날에, 열 살 이전까지는 다치거나하면 부모 책임이지만 그 이후에는 자신에게 생기는 모든 일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하셨습니다. 매우 충격적인 말이었고 그래서 저는 10살부터 어른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 대한 모든 판단은 스스로 해야 했고 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했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홀로서기를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아니었다면 신학교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매우 반대를 하셨을 때 갈등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님도 자신들의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듯이 저도 제 인생은 제가 결정하고 살아야 한다는 확신 속에서 아버지의 반대가 제 결정에 크게 작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버지도 제가 사제가 된 것을 크게 만족해하십니다.
한 번은 갈 곳이 없는 아이를 거두어 씻겨주고 옷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재워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그 아이는 며칠 동안 우리 형제들과 함께 먹고 자고 한 뒤에 우리들 돼지저금통을 훔쳐갔지만 이름도 몰랐던 가난한 아이를 받아주셨던 사랑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가난하게 살았지만 콩 반쪽도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정신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었던 무엇보다 가장 큰 유산은 가톨릭 신앙입니다. 불교 집안에 시집와서 처음엔 본인도 성당에 다닐 수 없었으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우리 형제들은 물론 아버지까지도 세례를 받게 만들었고 지금 보듯이 한 아들은 사제까지 되게 하였습니다. 어머니 때문에 늦게나마 사제가 될 수 있었고 만약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제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제 다 커서 어머니를 바라보니 실제로는 어머니가 거짓말도 가끔 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10살 아이에게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자기 책임이라고 가르쳤던 것도 당신이 매일 일하러 나가셔야 했기에 혼자 있는 제가 걱정이 되어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가난한 아이에게 그렇게 사랑을 베풀 줄 아셨지만 지금 보니 돈에 대한 집착도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어머니가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다른 것보다도 저를 가장 많이 사랑해 주셨기 때문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삼겹살을 구워주시면서 우리가 다 먹을 때까지 드시지 않으시던 모습, 항상 가장 먹기 싫은 부분만 골라 드시던 모습, 밭에서 일하시며 받으신 빵과 우유를 드시지 않고 우리를 위해 가져오신 모습 등은 그 분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장 큰 스승은 바로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마음이 쉽게 열리고 무엇이든 걱정 없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쁜 것을 나에게 준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지만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된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결국 우리는 그리스도께 배우고 또 배워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됩니다. 그리스도는 마치 우리에게 당신 살과 피를 주시듯이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즉 그분의 가르침 자체가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수난을 기꺼이 받으신 만큼 우리를 가장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가르침은 우리를 잘못되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고 따르고 있습니까? 그 분은 십일조를 내라고 합니다. 그 분은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분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십일조도 못 내고 사람을 판단하기도 하고 가난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스승으로 생각하면서도 사실 내 생각이 더 옳다고 믿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 그분의 가르침이 온전히 좋은 것이라고 믿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부활한 예수님을 향해 마리아 막달레나는 “스승님!”하고 부릅니다. 그녀가 일곱 마귀가 들렸었지만 회개하고 완전하여져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계심을 믿었고 그래서 그분을 참 스승으로 삼고 그분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따랐기 때문입니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지만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수 있습니다. 즉 스승의 사랑을 믿으면 그분 가르침을 따르게 되고 그러면 나도 그분을 사랑하게 되어 그 분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조금 더 믿고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사랑에 보답하는 유일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