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9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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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현 | 작성일2011-09-10 | 조회수36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11년 9월 10일 연중 제23주간 토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43-4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가 어떤 사람과 같은지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자는, 기초도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강물이 들이닥치자 그 집은 곧 무너져 버렸다. 그 집은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의 이야기. 그리고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기초 없이 맨 땅에 지은 집의 이야기는 듣는 사람에게 당연히 좋은 나무가 되고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해줍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좋은 것이 좋다는 식의 정해진 결론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포함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가끔 하느님의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느님이 그렇게 만드신 것처럼 생각하고 하느님 앞에서 좋다고 말하는 모든 것은 시련도 고통도 어려움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좋기만 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심각한 오해를 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야기 속의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가 끝에 구별되는 이유는 열매의 좋고 나쁨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그러기에 이 나무들이 같은 조건 속에 자라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같은 땅에 심어지고 같은 태양 아래 같은 양분을 받고 자라나는 나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야 좋은 나무, 나쁜 나무라는 구분이 가능합니다. 아니라면 땅을 탓하고 자라온 환경을 탓하기 마련입니다. 반석이나 모래, 혹은 기초 없는 곳에 집을 짓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 두 집은 동일한 조건을 맞딱드려야 하고 그래야 그 집이 튼튼한지 부실한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집에 들이닥쳐도..." 반석 위에 지은 집에 홍수가 나지 않고 강물이 집에 한 번도 들이닥치지 않았는데 우리가 그 집을 튼튼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반대로 기초도 없이 지은 집에 강물이 한 번도 들지 않았다면 그 집은 분명 그냥 서 있을 것입니다. 누가 그 집을 부실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이 이야기의 결론을 머리에 새기면서 하느님 앞에 좋은 나무가 되자 반석 위에 집을 짓자라고 말하고는 그러면 우리는 늘 좋은 땅에 서 있을 수 있고, 좋은 양분을 나쁜 나무보다 더 잘 받는다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가 지은 집에는 바람 한 점 부는 법이 없고 물이 차오르는 일 따위는 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좋은 나무요 좋은 집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러나 좋고 나쁨의 차이가 드러나기 위해서는 그 집 자체가 그 결과를 보일 수 있는 동일한 조건이 주어져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같은 땅에서 같은 조건에서 자란 나무라야 그 나무 자체가 좋은지 나쁜지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조건이 나쁘다면 좋은 나무 역시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 바람이 똑같이 들이칠 때 버틸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집을 판단할 수있는 것입니다. 나무가 좋으면, 집이 좋으면 상황이 바뀐다는 것은 우리의 편견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주 이 조건이 좋은 나무와 좋은 집의 조건인 듯 말을 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말까지 써 가면서 우리 주변의 상황을 우리 삶의 이유로 몰아가는 모습도 자주 보여줍니다. 하지만 조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나무가 어떤 뿌리와 줄기와 가지를 가졌는가가 어렵고 척박한 상황에서도 좋은 열매를 낼 수 있는 이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같은 세상에 같이 세찬 바바람을 맞고서 어떻게 버텨내는가가 좋은 집의 조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삶의 환경은 우리를 좋고 나쁘게 만드는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는가가 중요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하느님께 빌어서 삶의 조건을 바꾸려 하는 사람들, 또한 그것으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려 들고 자랑하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 속에 반석만을 탐할 것이 아니라 같은 세상 풍파 속에 살아가는 내 모습을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세상에는 열악한 조건에 있어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되었다 한탄하는 사람들과 그 조건의 사람들을 선입견으로 미리 예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좋게 말해봐야 하느님이 시련을 주셨다고 말하는 것이 최선인 사람들. 그러나 세상 사람들 어느 한 구석이 힘든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동일하게 마주 대해야 하는 조건일 뿐입니다. 같은 바람, 같은 물난리를 겪으면서도 마음 속에 있는 선함으로 서로를 살리고 구하고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좋은 나무의 자세이며, 반석 위에 서서 끝까지 그것을 버텨낼 수 있는 집의 조건입니다. 나무가 서 있는 동산을 보며 그 나무를 축복받는 좋은 나무라 말하지 마십시오. 거센 바람 한 번 맞은 적 없고, 비 바람 한 번 감당하지 않은 집을 보며 은총의 집이라 말하지 마십시오. 같은 세상을 살며 어떤 환경에서도 변함없는 사랑의 삶이 좋은 나무와 좋은 집의 조건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세상 비바람이 치는 곳, 햇볕 한 줌이 필요한 곳에 있는 집과 나무도 하느님이 세우신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좋은 생각과 좋은 마음을 품어 끝내 삶의 행복을 지켜내는 우리의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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