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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4주일 - 영적 순교[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11 조회수558 추천수0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모님 성지 찾아오시느라고 애쓰셨습니다.

건강하신 분도 계시지만 몸이 편찮으신 분들도 이 자리에 많이 계실 거고,

또 마음이 아프신 분도 계실 겁니다.


제가 늘 하는 말이지만 성지에 오셔서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그 마음이 뭐냐?

내가 내발로 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이 자리에 오기위해서 많은 준비를 하셨을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준비하신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성모님은

오늘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앉히려고 얼마나 많은 기도와 정성을 들이셨는지 몰라요.

다시 말하면 부르심에 대한 신비, 부르심에 대한 감사를 잃어버릴 때는 그냥 왔다가는...

소풍밖에 되지 않아요.

부르심에 대한 신비를 늘 기억하고 성지순례를 할 때, 성지마다에 내리는

특별한 은혜가 있어요.


이 성지에는 다섯 가지의 아주 중요한 영성이 있고

그 다섯 가지의 영성으로부터 세 가지의 영적 열매가 나옵니다.

그 세 가지의 영적열매를 여러분에게 주시고자

성모님은 여러분들을 오늘 이 자리에 불러주신 거예요.


세 가지의 열매 첫 번째가 치유의 은혜/ 두 번째가 구마의 은혜/

세 번째가 믿음의 은혜입니다.

우리들 중에 어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상처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남한테 말은 안하지만...때로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내 무의식속에서 집요하게 나를 기쁨의 세계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어둠이 사람마다 다 있습니다.

그런 어둠이 있을 때는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도 기쁨이 없죠?

그 어둠은 어디서 해결해야 되느냐?

어둠을 가지고 어두운데 앉아서는 해결이 안돼요.

집에서는 절대 그 어둠의 상처가 해결을 못 봐요.

교회는 그 상처를 지배하고 나를 놔주지 않는 사탄을 물리치는 곳,

빛이 강한 쪽으로 찾아가도록 자꾸 권하죠.

그 장소가 성지라는 거 아시죠?


이곳은 빛이 강한 곳이에요.

세상의 모든 성지가 다 빛이 강하지만 특별히 성모님의 성지는

성모님이 발밑에 뱀의 머리를 밟고 있어요.


여기도 산이 많은데 산에는 뭐가 꼭 있을까요?

<뱀>

성지에 와서 뱀에 물리면 이건 참 창피한거야.^^

성지에 와서 뱀의 머리를 밟아야 되는데 가끔가다가 아주 드물게 뱀에 물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뱀에 물린다 하더라도 여기 뱀들은 무공해 뱀이라 고생을 많이 안 시켜요.

세례는 못 받았어도 늘 성당 종소리를 듣고 사니까 다 착한 뱀들이야.^^


눈에 보이는 뱀은 피하면 되겠지만

내 마음속에서 내 영혼 속에서 꿈틀거리면서 내 삶을 지배하는

그 어두운 상처의 뱀은 피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내 몸뚱이가/ 내 영혼이/ 빛이 있는 쪽으로 적극적으로 맞서서 나아간다면

어둠은 빛을 이겨본 적이 없기에 그 어둠은 분명히 사라질 것을 믿습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오늘 여러분은 특별히 초대받으신 분이라는 것,

그러기에 불편함 때문에 나를 불러주신 목적을 잃어버리신다면

그거야말로 슬픈 일이고 애석한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 좁은데서 얼마나 힘이 듭니까?

부딪히고, 땀 냄새나고, 또 옴짝달싹 못하고 힘들지만 부산에서..제주도에서..

비행기타고 일본에서 오고 네덜란드에서도 이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휴가를 맞춰서

일 년 이 년 전부터 준비해가지고....이 자리에 앉아계신단 말이에요.


물론 여러분 가운데는 누가 가자고 하니까 마지못해 코가 껴서 온 사람도 있어요.

탁 보니까 서른두 명 앉아있네...척보면 알아요~~^^

코에 끼여서 왔든, 낚싯밥에 걸려서 왔든, 일 년 동안 준비해서 왔든...

제일 중요한 것은 초대받아 왔다는 것.

성모님께서 여러분들이 준비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준비하셔서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여서 오늘 이 자리에 앉혀놓으셨습니다.


친정엄마가 마음 고생하는 딸을 부르고 아들을 부를 때는 바리바리 싸서 뭘 줄 겁니다.


여러분들을 성모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아, 루시아가 뭐가 필요하고, 베드로가 뭐가 필요하고

저 수녀가 뭐가 필요하고, 저 신부가 뭐가 필요한지 다 알고 계셔요.


친정집에 찾아가면 엄마가 자식들이 오기 전부터 보자기 펴놓고

뒤뜰에 고추도 따고, 호박도 따고, 깻잎도 따고...

바리바리 싸가지고 나중에 차 트렁크 안에 집어넣지요?

그런데 싸가지 없는 자식은 뭐라고 해요?

‘엄마 차에 냄새나. 서울 가면 이런 거 많아.’

그때 엄마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

요런 자식을 우리는 후레자식이라고 그래.


오늘 여러분들에게 성모님께서 주시려고 바리바리 다 싸놨어요.

어저께는 보자기가 모자란다고 사제관까지 빌리러 오셨어.

사제관에 있는 보자기 다 끄집어내 가지고 쇼핑백까지 내가 빌려드렸단 말이야.

이렇게 준비하셨는데 우리들이 시원찮아서 주는 것도 못 받아간다면 이 얼마나 애석한 일이겠는가?

시편 81장 10절에 ‘너희들은 다만 입을 크게 벌려라. 내가 채워주리라.’

입은 크게 벌리고/ 귀를 크게 열고/ 눈을 크게 뜨고....

예수님이 거룩하게 변화되신 타볼산에 올라오셨죠?


예수님이 구약의 예언자들과 타볼산에서 아름답게 변화됐을 때 불행하게도

베드로사도는 졸음을 못 이겨 쿨쿨 잠에 빠져서 그 아름답게 변화되신 예수님을 못 봤어요.


이 타볼산에 올라와서도 머릿속은 세속에 가있다면

휴대폰이 울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베드로와 같이 영적 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이 아닌가!


9월 달은 무슨 성월입니까?

순교자 성월

아마 한 달 동안 여러분 본당에서는 순교자 성지도 찾아가고

신부님들은 틈만 나면 순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본당마다 피정일정을 잡아서 순교에 대한 피정을 시킬 겁니다.


순교에는 육적인 순교와 영적인 순교가 있다는 것 아시죠?

육적인 순교는 말 그대로 내 몸뚱아리 희생하고 봉헌해서 순교하는 겁니다.

육적인 순교의 가장 아름다운 꽃은 뭡니까?

목숨까지 바쳐서 하느님을 증거하는 순교!

지금은 박해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목을 내놓는 순교는 할 수 없지만 영적인 순교를 해야 돼요.


성모님은 메주고리예에서 메시지를 통해서 다섯 가지의 영적순교를 가르쳐주십니다.

이 영적인 순교를 통해서 나와 내 가족 내 공동체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다섯 개의 영적순교를 다른 말로 영적울타리라고 합니다.


어느 집이든지 그 집에 있는 귀중한 것을 도둑으로부터 지키려면 

성서에 나오는 대로 확을 파고 기둥을 세워서 담을 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긴장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을 뺏어가기 위해서

세속과 육신과 마귀가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영적싸움을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진흙탕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내 영혼을 지켜야 됩니다.

그 영혼을 지키는 영적울타리를 만드는 것, 기둥하나하나 세우는 것이 분명히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성모님께서 이 험한 세상에서 우리들이 영적순교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영적순교는 ‘영적울타리’, 다른 말로 ‘영적 흰 돌’이라고 그럽니다.


다윗과 골리앗이 싸우신 얘기를 아실 겁니다.

다윗이 싸울 때 창과 칼을 들고 나가지 않고 주머니에다가 흰 돌 다섯 개

조약돌을 주워서 나갔지요.

다윗은 늑대로부터 양을 지키던 목동이었기 때문에

돌 팔매질 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어. 어느 정도냐?

30미터 앞에 있는 파리의 왼쪽 눈을 맞췄단 말이야~~

물론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그런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싸우러 나오는 장수의 꼬라지를 보니까

자기 코딱지 반만도 못한 쬐끄만 놈이야~~

그냥 맥을 놓고 있는 사이에 다윗이 돌을 딱 끼워가지고 휙휙 돌리다가 휙~~~ 내던지죠?

다윗소년이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다윗 손에 있을 때는 단순한 돌이었지만

공중을 날아갈 때는 성령의 불이 되어서 마귀를 나타내는 골리앗의 머리를 뚫어버립니다.

2미터가 넘은 그 거구가 돌에 맞아서 ‘쿵’하고 쓰러졌을 때

다윗은 쫓아가서 칼을 빼어 심장을 찌르고 목을 자릅니다.

어리고 약한 다윗이 무지막지한 골리앗, 그 마귀와 싸워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흔히 볼 수 있고, 누구나 손에 잡을 수 있는 연약한 돌이지만... 성모님께서는 그

다섯 개의 영적 흰 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현대의 영적순교라고 얘기해주십니다.


영적 순교, 첫 번째는 단식입니다.

성모님께서 첫 번째 순교로 단식을 얘기하셨을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육이 기름지면 영은 어둡게 되어있습니다.

영이 어두우면 영적분별을 못하게 됩니다.

여러분들 밥 잔뜩 드시고 묵주신공 안 되지요?

배가 빵빵한 상태에서 묵주 들면 게트림만 ‘끅~끅~’나오고

눈이 게슴츠레하게 풀리면서 환희스럽게 그냥 갑니다.


옛날에는 칠죄종이라고 하는 일곱 가지의 죄의 원인가운데에 하나가 뭐였습니까?

탐도죄 

음식을 너무 탐하는 것도 우리 교리에서는 일곱 개의 죄의 원인 중에 하나라고 그랬어요.

왜냐?  음식을 탐하면 영적분별은 줄어들고 반대로 커지는 것이 성욕입니다.


가령 제대로 된 스님들은 겨울에는 동안거를 하고 여름이면 깊은 굴속에 들어가서

솔잎과 물과 미숫가루만 먹으면서 여름을 나는데 비록 몸은 너무너무 마르고 힘들지만

영은 어느 때보다 맑아져서 하느님과 일대일의 만남을 갖습니다.


우리 카톨릭의 역사도 보면 유명한 성인, 위대한 수도원 전부 다 어디에 있었느냐?

사람의 몸뚱아리가 견디기 어려운 광야에 있었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요한도 광야에서 살았죠?

들꿀을 먹고 낙타털옷을 입었습니다.

광야는 들짐승들이 살기 좋은 곳이지 약한 피부를 가진 인간이 살기에는 정말 힘든 곳입니다.

일교차이가 심하고 물이 없고..낮에는 덥고 밤에는 영하로 내려가죠.

그러나 놀랍게도 인간의 몸뚱아리가 견디기 어려운 그곳에서 위대한 성인이 나왔고,

다른 어느 장소보다도 하느님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분명히 사제는 사제대로 자기만의 광야가 있어야 됩니다.

평신도는 평신도대로 광야가 있어야 됩니다.

광야에서 하느님을 쉽게 만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뚱아리는 참으로 간사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서 있으면 몸은 자꾸 뭐라고 지시하죠? ‘앉아라! 앉아라!’

또 앉아도 ‘편한데 골라 앉아라! 골라 앉아라!’

또 한참 앉아있다 보면 ‘눈감고 자라! 자라! 졸아라. 졸아라.’

마지막에 또 무슨 지시까지?

‘발랑 자빠져라.’

발랑 누워서 묵주 기도할 수 있어요? 없어요?

할 수는 있죠?

발랑 누워서도 묵주기도는 되는데 그때는 그게 ‘발랑 묵주기도’


여러분들 저를 따라하십시오.

‘마음은 행위의 원천이요. 행위는 마음의 반영이다.’

‘혼란스러울 때는 전통으로 돌아가라.’

지금 이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 모릅니다.


우리 카톨릭 교회에도 사람의 몸뚱아리만 편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교회자체가 편한 것을 추구합니다.

진보다! 자율이다! 하는 미명하에 카톨릭 2천 년 동안 내려오던

귀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 안에도 얼마나 많은 어둠이 들어와 있는지 모릅니다.


성모님께서 첫 번째 영적울타리로 단식을 얘기하신 이유는

영을 맑게 해야만 영적분별력이 생긴다.


악의 역사가 있고 성령의 역사가 있는데,

악의 역사는 너무너무 교묘하게 성령의 역사로 위장을 하고 변장을 합니다.


영적분별력이 없으면 사제도 신자들을 끌고 구뎅이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로만칼라했다고 해서, 제의 입었다고해서 마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영적분별이 없으면 사제건 수도자건 평신도건 분별이 안 되기 때문에

어둠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시대는 영적분별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영적 분별은 육이 기름지면 절대로 올바른 분별이 되지 않습니다.


무릎이 꿇어지면 영혼이 꿇어집니다.

손바닥이 모아지면 마음이 모아지게 되어있습니다.

무릎이 꿇어지면 영혼이 꿇어지게 되어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전 세계 어디를 돌아 다녀봐도 장궤틀 없애는 천주교회는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정말 이거는 큰 심판받을 거라고 저는 생각이 됩니다.

유럽을 나가보고 미국을 가 봐도 전 세계를 돌아다녀 봐도 우리보다 훨씬 잘사는 나라,

문명이 발달된 나라에 가 봐도 성당에 들어가면 다 장궤틀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카톨릭 성당은 들어가면서부터 성수를 찍고 반 무릎을 꿇습니다.

자리에 앉을 때 무릎을 꿇습니다.

성체성혈 축성을 할 때는 그 자리에 대통령이 아니라 임금이

앉아있다 하더라도 무릎을 꿇어야 됩니다.


한국만이 유독 새로 짓는 성당들이 장궤틀을 안 놓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한다고 하는 명동성당부터 장궤틀을 없애기 시작했습니다.

종신 허원식에 가보면 수도원에서조차도 장궤틀을 없애는 수도원이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교회 안에 어둠이 들어와서 교회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요?


마귀는‘나 마귀요~~’ 하면서 지 모습 드러내지 않습니다,

너무나 교묘하게, 너무나 지능적으로, 절대 마귀의 장난이 아닌 것처럼 한 영혼을 망가뜨리고

공동체를 망가뜨리고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게 합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혼란스러울 때는 전통으로 돌아가야 된다.

신앙은 질러가는 길이 없습니다.

우직하리만큼 가야됩니다.

돌아가는 길이 없습니다.

그 분이 가르쳐주신 그 길로 가야됩니다.


여러분들 눈에나 내 눈에나 이것은 전부 다 흰 종이입니까? 까만 종이입니까?

흰 종이~~

이것은 과학적으로 봐도, 객관적으로 봐도 흰 종이인데, 하느님께서 내려다보시더니 ‘

그게 어떻게 희냐? 내 눈에는 까맣게 보인다.’

요랬을 때 종교인들은 눈알 땡그랗게 뜨고 뎀빕니다.,

‘아이고~~ 하느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이젠 눈도 멀으셨나 봐? 세상에 이게 흰 종이를 가지고

꺼먼 종이라고 그래.’

요렇게 따지고 듭니다.

그런데 신앙인들은 이제껏 흰 종이라고 알고 믿고 살았지만 하느님께서

그거 꺼멓다 그러시면 속으로는 무지하게 떫어도

‘자세히 보니까 까맣긴 까맣네요.’

요게 바로 신앙인 이예요.


종교인과 신앙인은 바로 그 차이예요.

종교인은 끝까지 하느님 앞에서 마저도 지 머리가 더 낫다고 분석하려고 하고 따지고

드는 것이 종교인이지만 신앙인은 단순하게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그냥 시키는 대로 무식하리만치 우직하게~~믿는 겁니다.

신앙은 머리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바로 신앙이죠.


성모님께서 첫 번째 단식을 통해서 영적분별을 해라.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을 하라고 권고를 하십니다.

외국에서는 약간의 빵과 물을 가지고 하루 종일 삽니다.


한국식으로 하면 한 끼는 굶고 두 끼는 원래 먹던 양의 반 정도로 줄이면

아마 성모님이 얘기하시는 단식이 아닐까?


초대교회 역사를 보면 적어도 한 사백년 동안은 천주교 신자들이 철저하게 단식 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슬그머니 없어지면서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일 년에 단 두 끼, 재의 수요일에

한 끼, 성금요일 날 한 끼를 굶으라고 권합니다.

그러나 그거 지키는 신자들은 삼십 프로가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 년에 단 두 끼도 금식을 못합니다.


천주교에서 버린 이 금식을 개신교에서 가지고 갔어요.

일 년에 여러 번 금식을 합니다.

그 사람들은 금식이 좋다는 것을 압니다.

영적훈련가운데 금식이 최고라는 것을 압니다.


짐승들도 몸이 다치고 치유가 필요할 때는 안 먹습니다.

개들도 굶습니다.

들짐승들도 몸이 다치면 치유받기 위해서 굴속에 들어가서 몸이 나을 때까지 굶습니다.

자연치유력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단식은 육을 살리는 것만이 아니라 영도 같이 살립니다.

여러분들, 집안에 어렵고 해결이 안 되는 일이 있고...

앞이 어디고 뒤가 어딘지 분별이 안 되는 분들은 금식하기 시작하십시오.

금식하다보면 안보이던 실타래 앞과 뒤가 보이고 매듭이 어떻게 묶여졌는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단식은 천주교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도 얼마나 많은 단식이 있었습니까?

성모님께서 옛날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초대교회처럼 다시 금식을 하라고 얘기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순교의 첫 번째 단추 첫 번째 기둥입니다.


두 번째, 영적순교는 기도입니다.

특별히 성모님은 묵주기도를 얘기하십니다.

묵주기도가 신비가 몇 개가 있죠?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 빛의 신비가 나온 것은 10년 안팎입니다.

그전에는 예수님의 공생활부분이 빠져있었어요.

빛의 신비가 들어섬으로써 이제야말로 묵주기도는 가장 아름다운 관상기도가 되었고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는, 구원의 역사를 묵상하는 그런 특별한 묵상기도가 됐어요.


성모님은 하루에 20단씩 봉헌하라고 하십니다.

많은 분들이 그 얘기를 들으면

“신부님, 저에게  차라리 저보고 기적을 요구하십시오..저는 1년에 5단 하기도 벅찬

사람입니다.”

만일에 하루에 20단씩 바치면 교회에서 돈을 100만원씩 준다고 한다면 많이 바치겠지요?~답변에 이어집니다~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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