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913 | |||
---|---|---|---|---|
작성자김용현 | 작성일2011-09-13 | 조회수30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11년 9월 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1-17 그때에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제자들과 많은 군중도 그분과 함께 갔다.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하느님을 믿고 사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일들은 모두 관심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하시는 일들의 이유를 찾고 일종의 '공식'처럼 만들어 내는 것도 익숙한 일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느님의 뜻에 더욱 가깝게 가고자하는 이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항상 하느님이 하신 일들이 지난 후의 결과를 놓고 만들어 지곤 합니다. 어느 정도의 결과를 보았으면 앞으로 언제 어느때고 하느님이 어떻게 하실지 예상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실제 그 예상은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으며 계속되는 풀이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와 함께 이 세상을 사신 예수님께도 이러한 부분은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숱하게 보여주신 모든 사건들을 우리가 지난 2천년을 이야기하지만 예수님의 기적이 어떤 공식처럼 이루어진다고 말하기에 우리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물으시고, 사람이 청하고, 기적이 이루어지는 일들도 있지만 이런 상황을 넘어서는 일들도 여전히 많기에 그것이 공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게 됩니다. 바로 오늘 기적처럼 말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기적은 죽은 사람을 소생시킨 일입니다. 그런데 이 기적은 '갑작스럽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모든 것이 이유 없이 빠르게 진행됩니다. 그저 주님 앞을 지나가는 장례 행렬, 이 행렬은 주님을 만나 기적적인 소생을 바라며 주님 앞에 멈추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행렬을 멈추시고 주님이 어떤 과정도 없이 이 젊은이를 일으키시어 어머니에게 돌려주십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라고 말하기에 사전 과정이 전혀 없었고 기적이 일어난 후에 주님의 모습 또한 어떻게 하셨는지 등장하지 않습니다. 기적이 일정한 모습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 일의 주인공인 주님께서도 기적을 통해 무슨 의도를 가지고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과부인 어머니의 눈물을 멈추시고 아들을 돌려주신 것이 이 기적이 보여주는 모든 것입니다.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이 체험에 따른 소문들이 이 기적의 목적이었을까요? 주님은 지나치는 길에서 아들을 잃고 우는 어머니에게 가엾다 생각하셨습니다. 그게 우리가 알 수 있는 이 기적의 이유 전부입니다. 만약 이 일에 대해 평가하고 정리를 하고자 한다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슬픈 일들, 그 일들이 간청이나 정성을 바치는 일이 아니라도 하느님께서 눈여겨 보시는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셈이 됩니다.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열거나 돌리기 위해 들여야 하는 정성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한 일이 됩니다. 분명 그렇게 기적이 일어난 일도 많았기 때문에 무조건 틀리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주님이 벌이신 이 난데없는 기적을 소홀히 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일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고 일정한 공식을 만드는 것이 조심스럽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짐작할 수 없는 하느님의 마음이라 하더라도 다행인 것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사정을 살피시는 주님의 마음이 세상 모든 이가 바라는 '착한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능력의 차이로 사람을 살려내느냐 아니냐의 차이를 말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눈 앞에 지나가는 사람의 사정을 살피고 그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이 이 기적의 시작이라고 할 때 그 마음을 함께 지닌 것이 하느님의 마음을 따라가는 길이라는 것은 분명하게 보입니다. 기적처럼 짧게 언급되는 주님의 마음이 아름다운 날입니다. 우리도 그 마음을 한껏 발휘하는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