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힘
어느 해 겨울, 영육으로 지쳐서 배티성지로 8일 피정을 떠났습니다. 피정을 시작한 다음 날,
아침부터 눈이 펄펄 내리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마을 길을 하얗게 하더니 조금 있으니까
소나무 숲을 하얗게 하고 40분쯤 지나니까 주변의 큰 산들도 하얗게 변했습니다.
눈이 내리기 전과 눈이 내린 후의 세상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이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하나하나 바라볼 때는 그
눈들이 마치 먼지처럼 힘이 없어 보였는데 그 눈들이 쌓이니까 세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 이것이 바로 기도의 힘이구나!”
내가 하는 기도, 어느 때는 먼지처럼 하는 기도도 많습니다. 졸면서 기도하고,
분심하면서 기도하고, 묵주기도 하면서 엉뚱한 생각을 할 때도 있는데,
이런 먼지 같은 기도도 쌓이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 현대 곳곳에 발현하셔서 우리들에게 “기도하여라, 기도하여라,
또 기도하여라” 하고 호소하시는 심정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날 하늘을 바라보며 “주님, 저도 하늘을 메울 만큼 기도를 많이 해서 주님과 성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곳을 하얗게 덮어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늘을 메울 만큼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나?
기도의 욕심이 생겼지만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잠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 가톨릭 기도서의 호칭기도 다섯 가지가 생각났습니다.
예수 성심 호칭기도, 성모 호칭기도, 성 요셉 호칭기도, 103위 성인 호칭기도,
성인 호칭기도를 매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제가 늘 해오던 기도들도 있는데
이 다섯 가지를 또 하려니 시간도 없고 부담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기도문들을 프린트하여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틈틈이 쉬는 시간에,
차 안에서, 자투리 시간에 꺼내어 들고 눈으로 줄줄 읽는 기도를 했습니다.
처음 몇 달은 무척 길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14년째 이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 기도들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고, 염경기도이지만 관상기도로 이어지는 체험도 합니다.
특별히 103위 성인들의 이름을 부를 때면 처음에는 낯설었던 이름들이 지금은 정겹고,
천상에 계신 그분들과 친하게 되어 성인의 통공의 힘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9월이 되면 103위 성인들을 한 분씩 생활 속에서 만나기 위해 매일 한 분씩
정해 놓고 103위 성인전을 읽고 그분의 일상생활과 순교하실 때의 상황을 묵상합니다.
이렇게 우리 성인들을 만날 때면 외국의 성인들보다 더 큰 감동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 옛날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보다는 덜하셨을 텐데 그분들은 자기 자신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셨고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사셨습니다.
하느님을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놓으셨던 우리 선조 103위 성인들은
제 삶의 모범이 되어 주시고 나침반이 되어 주십니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
김경희 루치아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