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응답
지금까지 우리는 고통에 대해 여러 말을 했지만
모든 인간 편에서의 해답은 어떤 단편이나 조각에
지나지 않음을 알았다.
인류의 고통은 너무나 큰 데 비해 우리 노력이나
대답은 매우 옹색하여 채울 수 없는 빈자리가 많다.
이 빈자리는 하느님만이 대답을 주고 채우실 수 있는
것으로, 하느님께서 그 대답을 주셨다.
곧 부활 사건이다.
부활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의문에 대한
하느님의 대답이다.
우리 개개인의 삶에도, 또 인류 역사 안에도 우리를
반항과 회의로 몰아가는 엄청난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성야의 말씀의 전례에서 엄청난
힘으로 터져 나오는 희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님은 살아 계시다. 그분은 부활하셨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깨우셨다!
저 모욕적인 십자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이 아니다.
새 출발이 있고, 고통과 죽음과 불신을 관통하는
찬연한 새 창조가 있다.(로마4,17참조)
하느님은 예수님의 부활 속에서 이 새 창조의 개시를
알리셨고,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온전한 신뢰 속에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21,3-4)
또한 세상으로부터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이들, 불치의 환자, 사랑하는 이를 잃은 모든 이도 희망할
수 있게 되었다.
때가 되면 결정적 재회가 있을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자유와 정의와 사랑 때문에 흘린 눈물을
모두 거두어 주실 것이며, 어떤 작은 것도 소홀히 대하거나
지나치지 않으실 것이다.
“고통이라는 걸림돌”
오늘의 묵상 :
우리들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것이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왜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통해 마음으로
전달되는지를 우리들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생각들로 하여금
우리는 실천에 옮기면서 생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생각들이
우리의 기도 또는 간절한 소망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하여 떠오르는 생각들이 바로 하느님의 응답입니다.
깊은 묵상 중에 떠오르는 빛과 생각에 집중하여
하느님의 응답에 귀를 기우리고 들려오는 소리에,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실천에 임하여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언제나 주님의 소리에 귀 기우리게 하시어
항상 새로운 생각과 새로움에 맞는 생활을 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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