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비얌 장수 - 최강 스테파노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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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9-16 | 조회수542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비얌 장수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가 제일 못 견디는 게 두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더위를 못 참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제법 추운 날씨가 시작되었는데 웬 더위 이야기냐고요? 열대 지방인 이곳은 사철 내내 무척 덥답니다. 반대로 저는 추위에 몹시 강해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로 내복이란 것을 한 번도 입어 본 적이 없습니다.
더위를 못 참는다는 것은 다분히 체질과 관련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얼굴은 평상시에도 좀 붉은 편이어서 가끔 ‘낮술 마셨느냐’는 엉뚱한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조금만 날씨가 더웠다 하면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면서 온 살갗이 빨갛게 변합니다. 이때 바로 더위를 피해 체온을 식혀 주지 않으면 불쾌지수가 너무 높아져 주변 사람들에게 마구 짜증을 내고 도무지 어떤 일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제가 참지 못하는 다른 한 가지는 뱀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은 어린 시절 경험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집 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구슬치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또래보다 서너 살 많은 형이 뱀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 형이 들고 있는 뱀은 이미 괴롭힘을 당할 만치 당했는지 막대기에 축 늘어져서는 가끔 꼬리 부분만 살짝 움직일 뿐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형이 우리를 한 줄로 쭉 세운 다음, 한 명씩 뱀을 목에 걸어 줄 테니 ‘그만’ 할 때까지 참으라고 시키는 겁니다. 당시에 이미 뱀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컸지만, 그 형은 뱀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으므로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제 친구들은 오만상을 찌푸려 가며 차례로 뱀을 목에 걸었고 드디어 제 차례가 왔습니다.
뱀을 목에 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목 놓아 울면서 그 형에게 사정해 볼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친구들에게 겁쟁이라고 놀림 당할 일을 생각해 보니 그 일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가까스로 눈물을 참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당당하게 ‘악의 세력’과 맞서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이 어디 마음먹는 데로 돌아간답니까? 뱀의 그 소름 끼치는 차디찬 느낌이 목에 닿자마자 저는 기절해 버렸습니다. 그다음은 아무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 후로 저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야. 일단 한 마리만 잡솨 봐”를 연신 외치면서, 무슨 책임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자기 책임은 아니라는 뱀 장수 근처에 못 가게 된 것은 물론, TV에 나오는 뱀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뱀에 대해 극도의 공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 주일 동안 여유가 생겨 깜뻬체 교구에 다녀왔습니다. 깜뻬체는 ‘과테말라’와 ‘벨리스’라는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 남동부에 위치한 유카탄 반도의 한 주州로 앞으로 제가 가서 일할 곳이기도 합니다. 가기 오래전부터 동료 멕시코 신부님들에게서 깜뻬체는 고온다습한 곳이라서 매우 견디기 힘들 것이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를 들어온 터라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하고 출발했습니다.
도착하던 날 기온이 섭씨 38도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마중 나온 현지 교구 신부님은 연신 ‘오늘은 좀 덜 덥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런 무더운 날씨에 열대성 스콜(소나기)이 한 차례 지나가고 다시 그 위에 태양빛이 작렬하니 습기가 땅에서 무럭무럭 피어오르는데, 그야말로 ‘고온다습’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겠더군요.
이튿날은 주교님께서 깜뻬체 교구 내에서 가장 ‘선교적’이고 가장 가난하다고 할 수 있는 본당 세 곳을 추천해 주셔서 그곳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중 한 곳은 폭우로 길이 끊겨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발첸’과 ‘쎈떼나리오’라는 두 본당을 방문했습니다. 직접 가서 현지 사정을 둘러보는 것이 앞으로 일할 본당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며 주교님께서 당신의 사륜 구동 차에 운전사까지 딸려 보내 주셨습니다.
두 본당 모두 화려하고 웅장한 마야 문명을 건설했던 마야의 후손이 살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차로 두세 시간을 달려 닿은 정글 속의 조그만 마을이었는데도 전기가 들어간다는 것을 빼놓고는 흡사 수천 년을 거슬러 온 것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로 지은 작은 전통 가옥이며 동네 구석구석을 뛰노는 돼지, 닭, 칠면조, 말 등 참으로 단순하고 가난한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 좋았어! 가난하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이 사람들과 함께 순수하고 쉬운 삶의 찬미가를 하느님께 바치면서 기쁘게 살아 보자!’
▒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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