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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917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18 조회수333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9월 17일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4-15

그때에 많은 군중이 모이고 또 각 고을에서 온 사람들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먹어 버리기도 하였다.

어떤 것은 바위에 떨어져, 싹이 자라기는 하였지만 물기가 없어 말라 버렸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한가운데로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서 백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외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비유의 뜻을 묻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 비유의 뜻은 이러하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길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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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비유와 해설이 이어지는 말씀 속에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가 어떤 땅의 모습일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는 길이 아닌가, 바위 위가 아닌가, 가시덤불이 많지 않나, 그리고 좋은 땅인지에까지 생각을 확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대게는 바위나 가시덤불 속에 걸려들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길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전의 상태이기에 오히려 신앙 이전의 상태에 사람들에게 닿은 하느님의 말씀에 가까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틀린 것이 없어서 들을 때 위안을 받지만 현실에선 정작 실천의 기회에 말씀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또한 말씀을 마음에 새기긴 하지만 세상이 만들어 놓은 질서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데 늘 힘겨워하고 고민하다 결국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덤불이 한계인 이유는 우리 삶의 고생길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두말할 필요 없이 좋은 땅이 되라고 알려주고 있지만 그 말씀을 현실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해보면 가장 좋은 땅의 모습은 가깝게는 예수님의 인생이기에 우리는 처음부터 엄두를 내지 못할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냥 내 삶의 고난을 겪는 정도는 각오할 수도 있다지만, 이 이야기가 사실은 주님처럼 살고 주님처럼 죽는다고 말하면 이것은 우리가 자신을 주님과 비교할 수 있는 위치로 생각하지 못하는것 처럼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입버릇처럼 말하곤 합니다.


"나는 예수님이 아니다."


이 말은 곧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말씀이 처음부터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일종의 선언인 셈입니다. 나는 예수님처럼 살지 못한다. 그것은 예수님이니까 가능했다. 그러므로 나는 못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처음부터 자라지 못하는 장벽을 치고 있는 셈입니다. 가시덤불은 처음부터 그렇게 우리를 압박하고 삶을 보람없이 만들고 허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이 불가능이 가능해질 수 있는 기반과 실제 내용이 있습니다.

씨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했을 때, 그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와 닿는 것은 우리의 귀에 들리고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에 새기는 정도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말씀과 하나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은 이미 그리스도와 같은 몸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각 사람의 다른 인생에 있어서는 맞는 말이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남기신 사랑에 의해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받아들인 땅일 뿐만 아니라 이미 자라고 있는 씨의 싹이며 줄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부족함을 생각할 때 맞는 말이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불완전한 인간이라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니 그것은 잠시 잊고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어떻게 이 어려운 인생길을 걸어 열매를 맺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초인적인 능력 때문에 살고 죽음을 겪으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완전함이라면 수난도 죽음도 없어야 맞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완전한 인간이나 겪는 경험들입니다. 예수님이 겪은 그 삶은 순전히 능력이 아닌 사랑으로 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사랑하기에 쉽지 않고 불가능하다는 그 순간에도 그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눈 앞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참 힘겹습니다. 그러나 그 힘겨운 순간에 누구나 갈등하는 것은 이 일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입니다. 알고 보면 나 혼자 살겠다고 하면 비켜갈 수 있는 순간들이 너무만 많습니다. 그러나 지켜야 하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우리가 당연히 감당하는 수고가 더 많습니다. 개인을 생각하면 거의 대부분이 불필요한 수고일수도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나를 위해 살고 싶다면 그래서 모두 포기하고 버리기만 하면 나 하나는 잘 살 수있을 것 같은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도 거의 대부분 그런 의미에서 쓸데없는 바보같은 행동이 많습니다. 보기에 틀리지 않고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 살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반대로 행동하면 내가 얻는 이익은 더 커지게 마련입니다. 그런 바보 같은 삶을 사신 예수님을 우리는 우리와 다르다고 말하며 달리 살려고 하진 않습니까?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이유로 우리가 선택만 하면 갈 수 있는 길을 가려 하지 않고 뒷걸음치고 이미 드리워진 덤불을 피해가려 하진 않습니까?


씨 뿌리러 나간 사람은 그 씨가 어떻게든 생명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 생명의 씨를 받고 직접 그 씨가 된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만든 이 한계를 걷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먼저 사신 그리스도에게 삶이 드리운 가시덤불이 그분의 능력으로 극복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분의 사랑에서 배우고 힘을 얻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순간 인생의 고난이라 부르는 것들은 그저 내가 사는 삶의 한 방법으로 변화하고 그 위에는 어떤 덤불도 없을 것입니다. 그 가시덤불보다 이미 나는 더 높이 자라 하늘 가까운 곳에서 열매를 맺고 있을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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