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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918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18 조회수291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9월 18일 연중 제 25 주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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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거의 모든 종교들은 최종 목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신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개인의 행복이나, 완전한 변화인 경우도 있어서 각 개별적인 완성인 경우들도 있고, 그 신앙을 가진 이들이 향하는 것이 한결같이 똑같은 가치인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최종 목적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내미시는 구원을 통해 하늘나라에 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신앙의 최종 목적이 같은 하늘 나라인 셈입니다. 그곳을 바라는 이들은 결국 함게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하늘나라에 대한 목표를 이루는데 사람들은 모두 그 방법이나 계기가 다양하게 마련입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신앙을 가진 부모에게서 길러진 사람부터 살면서 하느님을 알게 된 사람, 심지어는 죽음의 문턱에서 하느님을 알게 되어 그분께 자신의 생명을 맡기는 일까지도 있습니다.

그 시기가 다르다 하더라도 그 목적지는 같으며 그 목적지에 이르게 하시는 분은 다름아닌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누구라도 하느님을 깨닫고 그 나라에 들어오기를 바라시며 약속하셨고, 당신 아드님을 통해 그 모든 길과 열쇠를 보여주시고 전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열려진 가르침과 약속이지만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계기는 세상 사람들의 숫자 만큼이나 다양하고 그 시기도 같을 수는 없습니다.

아직도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도 많고, 전해지지 않은 곳도 있으며 삶의 모습에 따라 접근이 처음부터 어려운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차이점들이 가끔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할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나 좋은 하늘나라이지만 그 나라에 가는 길이 너무 좁고 험하다는 일반적인 생각들이 큰 이유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죽을 각오로 세상의 풍파를 헤쳐나가야 겨우 하느님의 심판 앞에 그래도 구원을 바랄 수 있는데, 그 시기가 길면 길수록 고생도 심하고 어렵기만 하다는 생각을 가지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라면 혹시라도 하느님을 늦게 알 수록 세상살이는 더 편했을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누리고 마지막에 아무 힘도 능력도 가진 것도 없을 때 하느님을 알게 되어 그분 앞에 구원을 소망하는 것이 곱게 보일리 없는 셈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하느님을 믿는 삶의 근본을 잊어버린 태도입니다. 복음의 이야기 속에서 포도밭 주인이 일꾼들을 모은 것은 주인에게 필요한 일꾼이었지만 주인의 태도는 조금 다릅니다.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꾼들에게 필요한 일, 그들에게 품삯은 약속된 결과이지만 거리에 그냥 있는 이들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일이었습니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길이 필요한 이들에게 주인은 그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모두가 똑같이 받은 한 데나리온의 가치는 일을 열심히 한 정도의 댓가가 아니라 올바른 삶의 길을 달린 이들에게 주어지는 동일한 결과일 뿐입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질투하는 이들이 이야기한 대로 한 평생을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


하느님을 믿는 것, 사람들은 그 구원의 약속과 하늘나라를 항상 그리며 살지만 그것은 하느님이 주시는 것일 뿐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을 올바른 방법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뙤약볕 아래라서 땀이 흐르고 힘이 빠지는 길이라도 그 길을 열심히 걸어가는 것 자체로 우리는 그 삶의 의미를 그 밭에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죽음 뒤의 세상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이 삶을 충실히 사는 것 그 하루 하루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향해 달려오라는 말씀으로 알아들어서는 안됩니다. 일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이 삶의 모든 목적이 아니었듯 우리도 근본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은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고 지금 우리가 하느님을 몰랐다면 거리에 그냥 하루 종일 서서 사는 목적도 모르고 이유도 없는 이들로 머물렀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에서 가장 기쁜 사람은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고 삶의 끝에서 하느님의 구원을 얻어낸 사람의 몫이 아닙니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일찍 참 삶의 의미를 깨닫고 열심히 살아서 하느님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게 살게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기준에 질투할 것이 아니라 그분처럼 기뻐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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