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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2011년 9월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18 조회수375 추천수4 반대(0) 신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2011년 9월 20일
 
루가 9, 23-26, 로마 8, 31-39.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입을 빌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신앙인은 현재의 목숨을 최대의 가치로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그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 곧 하느님의 일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목숨마저 버릴 수 있다는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오늘은 한국의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축일입니다. 북경에서 이승훈(李承熏)이 세례를 받고 귀국한 것이 1784년입니다. 그 이듬해인 1785년부터 시작된 박해는 1882년 조선 조정이 미국과 수호 조약을 맺기까지 약 백 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 동안에 참수 혹은 옥사(獄死)로 순교한 분들의 수가 만 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분들은 온갖 잔인한 형벌을 받고, 비참하게 죽어 갔습니다. 그 가족들도 하루아침에 비참한 신세들이 되었습니다.
 
외국에서 선교사가 아직 파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중국으로부터 영입하였다는 사실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신앙이 한국 땅에 뿌리도 채 내리기 전에 박해는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 신앙인이 된 분들은 교리 교육도 충분하게 받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 명이 훨씬 넘는 분들이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렸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리스도 신앙을 연구하고 영입하였다는 사실과, 신앙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였던 시기인데도, 많은 분들이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천주교 관계 한문(漢文) 서적들,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天主實義)」를 비롯한 한문으로 된 몇 권의 서적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7세기 초였습니다. 이승훈이 세례를 받기 약 150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것을 서학(西學)이라 불렀습니다. 그 시대 이 문서들을 영입하여 연구한 사람들은 실학파(實學派)라 불리는 유교 학자들이었습니다. 유교 국가를 표방하는 조선의 지성인들은 성리학(性理學)의 공리공론(空理空論)에 빠져 있었습니다. 실학파 학자들은 합리적이며 현실성 있는 학문과 사회 제도를 찾고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이라는 엄청난 민족적 시련을 겪은 직후의 일입니다. 그 무렵 실학파가 연구한 천주교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였지만, 또한 새로운 세계관, 사회관이기도 하였습니다.
 
「홍길동」이라는 소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소설의 저자 허균(許筠)도 이 실학파의 한 사람입니다. 허균에 대한 연구서를 쓴 어떤 학자는 그 시대 조선 사회의 모습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첫째, 무고로 죄 없는 사람들을 고발하여 감옥에 가게 하는 일이 많아서 백성은 불안하고 서로 믿지 못하는 풍조가 휩쓸었다. 둘째, 벼슬 팔아먹기와 뇌물과 횡령이 판쳤다. 셋째, 과거(科擧) 시험 문제가 사전에 유출되는 등 부정이 행해지고 벼슬아치들의 부정부패는 당연한 것으로 되었다. 넷째, 무리한 토목공사들을 벌려 놓고 관리들은 공사 자재를 횡령하고, 민생고에 허덕이는 백성들로부터 재물을 빼앗아서 매우 사치스럽게 살았다. 결국 임금으로부터 지방 수령에 이르기까지 자기 신분을 보호하기 바빴고, 그것을 위해서는 금력이 필요했다. 임금은 신하들로부터, 신하들은 백성들로부터 재물을 빼앗는 길밖에 없었다.”(이이화, 「허균」 한길사 1997, 45-47). 그 책의 저자가 소개하는 절망적인 그 시대의 사회상(社會相)입니다.
 
이런 여건에서 서학을 공부한 실학파 학자들에게나 후에 신앙을 영접한 초기 신앙인들에게 그리스도 신앙은 대단히 신선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여주었습니다. 군주(君主)가 절대적이 아니라, 하느님이 계시고, 그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 법은 조정(朝廷)이 만들어 임금의 이름으로 반포하면, 백성은 그것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하느님이 질서 지어 만드신 자연과 마음의 법, 곧 자연법과 양심법을 가르쳤습니다. 노예와 같이 법을 지키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연의 법을 존중하고, 양심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0, 1)을 열어주는 사상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법은 당시에 자행되던 부정부패와 약자에 대한 횡포를 방관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조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이 자비롭고 사랑하신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습니다. 무자비한 법과 제도에 한 마디 항의도 못하며, 짓눌려 살다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질서, 곧 정의와 자비와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그 시대 인간과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부조리를 한 순간에 걷어내는 기적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주는 일이었습니다.
 
조상제사 거부라는 죄목은 그리스도 신앙인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이 찾아낸 명분이었습니다. 조상제사는 그 시대 유교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신앙인들이 그것을 거부한 것은 유교 국가의 근본 질서를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왕과 권력 구조의 절대성을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신앙인들이 축첩(蓄妾)을 거부한 것은 유교가 가르친, 남녀 차별의 철칙을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신앙인들은 그 시대의 계급차별도 거부하였습니다. 사람은 모두 하느님을 아버지로 한 자녀라는 의식은 계급적 차별을 거부하게 만들었습니다. 순교자들 중에 백정(白丁) 출신인 황일광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나에게는 천당이 둘 있다. 하나는 죽어서 가는 천당이고 또 하나는 양반과 쌍것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똑같이 존중하는 이 세상의 천당이다.” 백정 출신으로 멸시 당하며 살던 사람이 신앙인이 되어 신앙 공동체에 참여하여 느낀 것입니다. 계급의 장벽 없이 모두가 형제자매로 통하는 신앙공동체는 그에게 또 하나의 천당이었습니다.
 
순교자들은 이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그들의 목숨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열리는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질서를 열망하였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울로는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 39) 우리의 순교자들은 그 하느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그 믿음을 굽히지 않고, 모진 형벌을 당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분들은 죽음을 넘어 하느님을 향해 떠났습니다. ◆
                                            
                                          서 공석 신부 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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