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년 전 미국에서 공부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콩글리시’를 남발하다 벌어진 작은 실수였습니다. 책상 위에 놓으려 ‘스탠드’를 사러 갔는데 점원이 제 말을 도대체 못 알아듣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설명을 하자, “Study light!” 하더군요. 영어에서 빛이 나오는 건 ‘light’ 또는 ‘lamp’입니다. 거리를 밝히는 빛은 ‘street light(lamp)’이고 책상 위에 놓고 책을 보기 위해 밝히는 빛은 ‘study light(desk lamp)’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을 때나 책을 보려 할 때 빛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생에도 빛이 필요하지요. 특히 위기 상황에서 앞날이 막막할 때 자신의 앞길을 비춰줄 빛이 필요합니다. 그 빛이 바로 예수님이시지요. 예수님은 처음부터 우리 곁을 비추는 빛이셨습니다.(요한 1,19) 또한 빛 자체이시기에 당신을 감추거나 숨기신 적이 없습니다.(요한 18,20 참조)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약점이나 잘못을 감추거나 숨기려 합니다. 죄를 지은 아담이 나무 사이에 숨었던 것처럼(창세 3,8) 사람은 어둠 속에 자신을 감추거나 숨기려 합니다. 하지만 감춘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숨긴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지요.
영어 좀 한다고 자신만만했던 제가 아무 생각 없이 ‘콩글리시’를 구사하다 순간 당황하고 창피해서 숨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실수를 통해 또 하나를 더 얻고 배운 셈이지요. 영어도 삶도 신앙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감추기보다는 드러내고 숨기보다는 꺼내어 주님의 빛 안에 비춰봐야 하지요. 더 나아지고 싶다면 감추면 안 됩니다. 기준이 되는 것에 비춰봐야 합니다. 신앙의 기준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빛,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께 비추어 본다면 우리도 그림자에 머물지 않고 빛이 될 수 있습니다. 빛이신 주님을 담아, 다른 이에게 주님을 비추는 등불, 바로 ‘faith light(lamp)’ 말입니다.
박기석 신부(서울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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