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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5주간 - 주님을 증거하면.....[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19 조회수392 추천수2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오늘 이렇게 뵈니까 딴 곳으로 가신 분들도 많고, 또 고향을 찾아오신 분도 있고... 아니면 연휴가 길다보니까 고향 가기 전에 성모님한테 인사나 드리고 가자! 하고 세배 드리러 오신 분도 많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세배 열심히 하고 가시기 바랍니다.^^


종교학자들이 얘기하기를 ‘그리스도교는 그 시작부터가 세상과 싸우는 종교였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스테파노의 순교로부터 시작해서 이 세상에 불의와, 그것도 한 집안에 하느님의 말씀을 떨어지면 양자택일을 해야 합니다.

따르느냐.....아니면 등을 돌리느냐!

예수님은 내 말을 따르려면 부부지간에도 갈라질 수 있고, 고부간에 갈라질 수도 있고, 부모 자식 간에도 달라질 수 있다.

아무튼 하느님 말씀을 들었을 때 분명히 태도를 확실히 해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학자들은 그리스도교가 이 세상에 온 이후부터 그리스도교는 그 시초부터가 세상과 싸우는 종교였다! 하고 표현을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십자가의 길을 주십니다.

여러분들이 세례받기 이전에 교리를 받으시면서 세례 받은 후에 뭐가 달라지는지에 대해서 얘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세례 받는 당일 날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도 아니고, 여러분들 입으로 분명히 신앙고백을 하셨을 겁니다.

세례만 받아봐라! 한평생 아프지 않을 것이다!

세례만 받아봐라! 한평생 돈 걱정할 이유가 않을 것이다.

세례만 받아봐라! 모든 근심 걱정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이런 약속을 단 한 번도 하신 적 없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약속은 단 두 가지

니 십자가 지가 지고 가라!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라 저 세상 것이다!

너희가 이 세상 살다보면 나를 따르기 위해서는 많은 고통 중에 있을 터인데, 그걸 참고 이겨 내면 하늘에서 그만한 보상을 주리라!

다시 말하면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하늘에서도 나도 너를 모른다고 할 것이지만, 나를 위해 나를 증거 한다면, 하늘에서도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하는 이야기가 오늘 복음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우리의 첫 번째 교황이신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이 잡혀가시고 난 후에 두려움 때문에 세 번이나 배반했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또 한 번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대신해서.....


안 끕니까?

할머니들은 휴대폰을 못 끕니다.

ㅎㅎㅎㅎㅎ

순례 때 이렇게 할머니들 보면, 연신 울려 제끼는데 끌 재간이 없으니까 어떤 할머니들은 엉덩이 밑에 깔고 앉습니다.

그런다고 꺼집니까?

나중에는 엉덩이 밑에 깔고 앉다보니까 희한한 방구소리 같은 게 나와~~

삐리릭..피리릭~~

휴대폰이 참 공해예요...참 분심덩어리야~~

분위기 잡고 나가다가 싹 다 까먹었습니다. 저 휴대폰 소리 때문에~~

두 번 울렸을 때 꺼야 되는데, 계속 가만히 계시는 거야~~

건 놈 니가 알아서 꺼라! 난 죽어도 못 끈다!

뭔 얘기까지 했지요?

뭐 하긴 했는데....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는데... 뭔 얘기 하다가 말았어요?

아, 베드로 사도가....그렇지요! 하이고~~


베드로사도가 예수님 살아계실 때 세 번 배반해서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예수님 돌아가신 후에도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건 성서에 안 나오죠?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어요.

베드로사도가 예수님을 대신해서 로마의 교우들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여전히 박해는 하늘을 치닫습니다.

그래서 교우들이 어떻게 했느냐!

“스승님, 피하십시오...사도께서 잡혀 돌아가시면 우리교회는 풍지박산이 되니까 제발 로마를 떠나서 딴 곳으로 피하십시오.”

 

처음에는 강하게 “나까지 갈 수 없습니다. 죽어도 여기서 죽겠습니다.” 했지만 베드로도 그 십자가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일말이 있는지라 나중에는 못 이기는 척 하면서 로마를 피해서 달아납니다.

로마를 떠나서 ‘알반’이라고 하는 언덕길에 이르렀을 때, 저 언덕 위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내려오는데 그 사람 주변에 눈부신 광채가  너무너무 나서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어요.

이렇게 샛눈을 뜨고 ‘저게 누군가!’ 하고 보니까

세상에~~ 누구였을까요?

바로 꿈에도 그리던 예수님이 내려오시는 거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가 했던 첫마디가 그 유명한

“쿼바디스, 도미네!”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묻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슬픈 얼굴로

“베드로야, 네가 네 양들을 버리고 홀로 그렇게 가니 나는 오늘 너를 대신해서 로마로 다시 가서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간단다!‘

베드로 사도는 그 말에 앞으로 거꾸러졌습니다.

주님, 저는 정말 죽일 놈이군요...주님 살아생전에도 그렇게 세 번 못을 박았는데..... 또다시 제가 혼자 살려고 도망치다가 주님 앞에 이렇게 부끄러움을 당하다니요...주님 절대 안 되십니다. 하늘로 올라가십시오. 다시 제가 돌아가겠습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고....

다시 오던 길을 한숨에 달려 내려가서 로마군인들에게 잡혔습니다.

기원 후 64년 가을에 수많은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원형극장 안에서

“주님을 네 번이나 배반한 나 같은 죄인은 주님과 똑같이 하늘을 쳐다보고 십자가에 처형될 수 없다..나는 거꾸로 못 박아 주시오!

이렇게 베드로사도는 거꾸로 못 박혀 세상을 떠나십니다.


위대한 사도들도 극도의 고통과 어려움이 오면 십자가를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우리같이 약한 인간들, 십자가 보일 때마다 주님의 그 말이 원망스럽겠습니까!

‘니 십자가 니가 지고 따르라!’ 는 말이.....

그러나 교우여러분들, 십자가는 지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는 겁니다.

십자가를 늘 지려고 하니까 자꾸 넘어지고 코가 깨지고 힘이 들지만....

십자가를 끌어안으려고 할 때는 훨씬 수월합니다.

베드로 사도, 그 전에 첫 번째 순교자인 스테파노 부제, 그 이후로 우리 교회는 수많은 순교자를 내었고....이 세상에 어떤 종교도 이같은 순교자를 배출한 종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서에 나타난 순교자들의 특징을 보면 첫 번째가 마카오베오 전서 2장 37절 “너희들이 죄 없는 우리를 죽였다는 것을 하느님이 알고 땅이 증언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깨끗하게 죽겠다!”


성서에 나타난 순교자들의 첫 번째 특징은 두려움이 없다는 겁니다.

뭐가 없다구요?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느님이 내 안에 없을 때는 자그마한 두려움도 잠을 못 자게 하지만, 내 삶의 중심에 그리스도가 계실 때는 어떤 두려움도 무섭지 않습니다.

죽음을 무섭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한 자는 죽음도, 고통도, 모든 불의 앞에서도..,,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느님의 자식으로 죽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순교 성인들, 포도대장 앞에 끌려가서 하늘과 땅의 일치를 증언했습니다. 포도대장은 화가 나서

“저놈의 혓바닥 다 뽑아버려라. 그래도 하느님을 증거 하나 보자 ”

천주교신자들은 무참하게 혓바닥이 뽑혔습니다.

그 피를 철철 흘려가면서, 죽어가면서도, 손가락은 하늘을 향해서, 하느님을 향해서....아무런 두려움 없이 오히려 포졸들을 축복하면서 죽었던 것이 우리 순교자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한 자는 죽음과 불의와 고통 앞에서도 의연합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흰 거는 흰 거고, 검은 건 검은 겁니다.

늘 하느님에게 의지하고 신뢰합니다.

예기치 않았던 고통이 오더라도 늘 당당합니다.


어떤 인간이 밑에서부터 흔들어재껴도 절대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습니다.

두려움이 없다고 하는 것이 성서에 나온 순교자들의 첫 번째 모습입니다.

환경이라든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늘 인간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미운 놈 피해 도망가면 또 미운 놈이 또 하나 나타나고....그 놈 피해 달아나면 또 다른 미운 놈이 나타납니다. 어찌 한평생을 사람만 피해서 살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어떤 환경이..... 나를 괴롭히더라도 하느님 중심으로 있으면 흔들림이 없습니다.


두 번째, 성서에 나타난 순교자들의 특징은 사도행전 7장 59절에 스테파노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스테파노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에게..저 사람들에게 지우지 말아주십시오!”

성서에 나타난 순교자들의 두 번째 특징은 책임 전가를 하지 않습니다.

뭘 하지 않는 다구요?

이 세상이 엉망인 것은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이 나라 꼬라지가 이렇게 된 것도 일은 다 벌려놓고 책임질 사람이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 신앙인만이라도 각자 맡은 위치에서 책임을 지고 산다면, 세상은 이렇게 타락하지 않을 겁니다.


낙원에서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그 원인은 뭡니까?

선악과를 따 먹었다는 그것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에 있습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탓을 돌리고, 하와는 뱀에게 탓을 돌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쫓겨난 이유일 겁니다.

순교자들은 박해하는 자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기도해 주었습니다.


제가 미국의 어느 성당에 가서 피정을 시키고 미사를 드릴 때, 그 성당은 몹시 혼란스러운 성당이었습니다.

미국성당을 빌려서 어렵게 어렵게 10여년 동안 미사를 드리다가 신자들이 귀한 돈을 모아 부지를 사서 새 성전을 지었는데, 성전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겁니다.

수많은 돈이 누구 입으로 들어갔는지 찾을 길이 없었던 겁니다.

이래서 본당이 둘로 갈라졌는데, 회장파와 부회장파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회장은 부회장 더러 “니가 감독 소홀히 했다.”

부회장은 “그게 왜 내 책임이냐! 회장, 니가 해야 될 거 아니냐!”

미사를 드리는데 기가 막힙디다!

왼쪽 오른 쪽이 정확히 갈라져서 이쪽은 회장들파, 저쪽은 부회장 파였습니다. 평화의 인사를 할 때 절대 옆은 쳐다보지 않고 지들끼리만 하는 거였습니다. 쫓아가서 귀퉁뱅이를 갈기고 싶었지만, 제의 입고 그럴 수는 없고...


한동안 우리 신자들은 차 뒤에다가 뭘 붙이고 다녔습니까?

‘내 탓이오!’ 였습니다

그것도 웃기는 겁니다.

왜 뒤에 있는 놈 보고  “내 탓이오!” 합니까?

붙이려면 앞에다 붙이고 지가 회개해야지~~

스티카 붙이려면 제대로 붙여야지....

순교는 원망치 않고 ‘내 탓이오!’ 하는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나 만이라도.....’ 가 아니라 ‘나 혼자만이라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서 마을잔치가 있었다고 합니다.

1년 전부터 그 마을의 큰 경사를 위해서 집집마다 술을 다 담그기로 약속을 하고, 1년 후에 잔치가 벌어져서

“1년 동안 담가두었던 갖가지 그 맛있는 음식을 다 가지고 오시오.”

사람들은 큰 병에다 하나씩 술을 담아가지고 와서 큰 독 하나에다가 ‘꿀럭꿀럭’ 다 부었습니다. 큰 독 하나가 술로 가득 찼습니다.

잔치가 시작되어서 동네 이장님이 술을 다 돌리고 난 다음에

“자 우리 마을 경사가 있으니, 힘껏 건배 외치면서 한 잔 합시다... 우리 마을을 위하여!”

꼴깍 꼴깍 마셨어요. 그런데 다들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러느냐!

술이 아니라 물이었던 겁니다.

사람들은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나 하나쯤 물 갖다 부어도 되겠지! 한 것이 온 동네 놈들이 다 물을 갖다 부은 거예요. 그러니 술독이 아니라 물독이 되었지요?

그날 서로 밥알이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눈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당했고.....그래, 다들 결심을 했어요.

‘자,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들 생각하지 말고 나만이라도 정직하게 살고, 다른 사람 탓할게 아니라 우선 나 자신부터 정직하게 살자.’

그 부끄러운 사건을 통해서 전화위복이 되어가지고, 그 마을은 얼마나 화목하고, 서로 아끼는 마을이 되었다고 그럽니다.


순교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다른 사람 탓을 하지 않습니다.

김대건신부님도 목이 잘릴 때 망나니에게

“어떻게 하면 편하게 치실 수 있습니까!”

자기를 고문하는 그 포졸들에게

“출세를 하셔서 높은 관직에 오르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게 바로 순교하는 이들의 모습이었지....죽으면서까지 이를 갈고

“야, 이놈아, 내가 죽어서 귀신이 되어서 밤마다 나타나서 다 뜯어먹겠다.”

요렇게 하고 죽은 순교자는 단 한 명도 없더라!

맞지요?

그래서 순교의 두 번째 특징은 남을 탓하지 않고 책임전가를 하지 않는다.


세 번째 특징은 베드로 전서 4장 12절에 나오는 대로

“그리스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행복합니다.”

세 번째 특징은 모욕을 잘 참아냅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면, 사랑이 내 안에 있으면....

그전 같으면 성질나고, 존심이 상하고. 밸이 꼴려서 잠을 못자고 복수의 칼을 갈 그런 일들을 용케도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그래, 내가 그 사람 입장이었다면...하긴 내가 더 했을 거야..그 사람보다 더 했을지도 몰라, 내가 그 사람에게 돌 던질 자격이 없지, 하긴 나도 그 입장 되면 더 못되게 굴었을 수도 있어!‘

늘 그런 입장으로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순교의 첫 번째 단추는 많은 성인들이 이야기하시기를, 분노할 때 참는 것입니다.

화날 때 참지 못하는 것이 무슨 목을 내놓는 육의 순교를 하겠느냐! 하십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모욕을, 상처를 안 줄 것 같은 사람이 상처를 주는데 충격을 받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여러분들, 살아가시면서 그런 경험이 있었을 거고 반대로 여러분을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준 것,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지가 받은 상처만 돌에 새기고 살지, 다른 사람에게 주었던 상처는 얼마나 쉽게 쉽게 합리화시켜 버립니까!

어떻게 보면 제일 가까운 부부지간에서도 그런 상처를, 그런 모욕을 주고받기가 쉽습니다.

내 아내라고 해서 남편이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요, 내 남편이라고 해서 남편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토요일 밤새 술 먹고 아침에 대판 싸움이 벌어집니다.

술 먹고 술 냄새가 나고 싸움은 했어도, 그래도 꼴에 구교 신자라고

‘아유, 그래 성당 가야지...’

하면서 남편이 성당가려고 나오는데 마누라가 뒤에다 대고

“아유, 웃겨~~ 그 꼬라지 해 가지고 뭐 성당 나가려고.....니가”

구두끈 매다 말고 다시 돌아서서

“너나 가, 그래 남편 놔두고 천당 어디 잘 가나 보자!”

서로가 막 가는 식으로 나옵니다.

부부 일심동체인데, 남편이 지옥 가는데 지는 천당 갈 수 있겠습니까!“

성가정은 살아가면서 환경 속에서, 사람을 통해서 많은 모욕과 상처를 받을 때마다...그 상처를 봉헌하는 것이 바로 순교입니다.


오늘 우리는 순교자 대축일을 지내면서 다시 한 번 결심합시다.

순교자들이 성서에 나오는 모습은 첫 번째, 두려움이 없더라!

죽음과 불의와 고통 앞에서 두려워하지 맙시다.

까짓것, 죽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느님 외에 다른 것을 우상숭배하지 맙시다.


두 번째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다른 이에게 책임전가를 하지 맙시다.

내 가슴을 두드려야지....

우리는 미사 때마다 고백의 기도를 합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다!’

지 복장을 때리면서 속으로는

‘니 놈 탓이오, 니 놈 탓이오, 니 놈 탓이오! 내 꼬라지가 이렇게 된 것도 다 너 때문이오!’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위선자처럼 보이고 꼴 같지 않겠습니까?

복장이나 치지 말아, 이놈아!


세 번째, 순교자들은 어떤 모욕도 잘 참아내었습니다.

그래서 순교는 육적인 순교와 영적인 순교가 있는데 이런 영적인 순교가 훈련이 잘 되어 있어야 육의 순교에 이를 수 있음을 알고, 이러한 영적인 순교를 위해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영양제를 주십니다. 그 영양제가 바로 말씀이요, 미사 때 마다 주시는 성체입니다.

성체로 양육되어 이 순교의 정신으로 영적 순교자가 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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