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2011년 가해 연중 25주간 화요일-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 2
어렸을 때 그냥 보기만 해도 좋았던 같은 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좋아한다는 것이 뭐 그리 부끄러운 일인지 그저 남몰래 바라보는 것만 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어려운 문제를 내셨습니다. 여기저기 무작위로 학생들을 찍어가며 질문을 하였지만 아무도 답을 맞히는 아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반 분위기는 점점 무거워져갔고 그 여자아이도 답을 알지 못하여 다른 아이들과 함께 서 있게 되었습니다. 저에게까지 질문이 날아왔고 다행히 저는 대답을 잘 했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저에게 팔뚝만한 몽둥이를 주시며 답을 맞히지 못한 아이들의 손바닥을 세 대씩 때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이기에 처음엔 약하게 때렸지만 선생님의 세게 때리라는 강압에 못 이겨 최대한 세게 때리는 척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 차례가 되자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의 눈이 저에게 집중되는 것같이 느껴졌습니다.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고 그래서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더 세게 내리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대 맞고서 무서워 손바닥을 자꾸 뒤로 빼는 그 아이의 가녀리고 떨리고 벌겋게 변해버린 손을 저는 비정하게 끝까지 같은 세기로 세 번 내리쳤습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교무실 갈 일이 있어서 들어갔는데 그 선생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너 걔 좋아하지?”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부끄러워 온 몸을 다 써가며 “아니에요?”라고 강하게 부정하였지만 선생님은 ‘다 알고 있어.’라는 표정을 지어보이시며 야릇한 미소를 지어보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추어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과 성모님 사이에 감추어진 것이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 감추어진 것을 찾아내라고 오늘 복음을 바로 뒤에 써 넣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시기 위해 올라가실 때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요한 7, 5). 따라서 오늘 복음에서도 그들이 좋은 의도로 예수님을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에서 그들이 찾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가르치던 내용은 ‘악령’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들도 예수님이 미쳤거나 마귀 들렸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한 가문에서 그런 잘못된 사람이 나오면 온 일가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가족들이 나서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만나기를 거부하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속에 성모님이 끼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마태 12, 48-50)
예수님은 이렇게 당신을 믿지 않는 무리들 속에 속해 있는 어머니에게까지 당신의 매서운 채찍을 휘두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오직 예수님과 성모님만이 통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두 분 사이에 감추어진 것입니다.
세상 누구도 실천하지 못했을 하느님의 뜻을 그리스도와 성모님 두 분만이 실천하고 계심을 두 분 다 너무나 잘 아시고 계신 것입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아드님께 이 세상에 내려가 수난하여 인간의 죄를 씻어주라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또 이 소명을 이루기 위해 당신 아들에게 자신의 순결한 육체를 주고 또 어머니로서 아들과 함께 수난의 고통을 겪어낼 여인이 필요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 뜻을 전했고 마리아는, “주님의 종이오니 주님의 뜻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하시며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하셨습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신 분이 어떻게 당신 아들을 의심할 수 있었겠습니까? 가족들은 어쩌면 아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고 하여 어머니까지 함께 끌고 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지 않는 가족들과 함께 채찍을 휘두르시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이라야 내 어머니시다.”라고 하시며 오히려 성모님만이 당신의 참 어머니가 되심을 재천명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 있는 성모님까지 함께 꾸짖으셔야 했던 것은 어쨌거나 성모님이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길게 설명할 수도 없는 처지에서 그렇게 말씀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예수님의 마음도 무척이나 아프셨을 것입니다.
그 때의 그 아이는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렇게 세게 때릴 수밖에 없었던 저의 마음을 이해했을까요? 그러나 두 분은 이 상황에서 외적으로는 같은 편에 설 수 없는 두 분이 겪으셔야 하는 마음의 아픔과, 내적으로 아버지의 뜻을 완전히 따르는 두 분만의 사랑과 위로를 동시에 느끼고 계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십자가 아래에서 끝까지 당신 아들과 함께 고통을 겪고 승천하시어 하늘의 영광을 차지하심을 통해 이 숨겨진 진실들이 밝히 드러났습니다.
<아무 것도 너를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