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로 시작하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에필로그 ‘장미묵주’에는 다시 그 시작을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 개월째다.”라고 합니다. 엄마를 잃은 지 일주일에서 구 개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엄마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엄마가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장미묵주를 산 주인공 ‘너’는 성 베드로 성당 안에서 피에타 상을 봅니다. 죽은 아들의 시신을 안고 있는 성모님의 단아한 모습에 꼼짝없이 얼어버린 주인공 ‘너’는 “어미 됨을 부정당하고도 아들의 주검에 무릎을 내준 여인”을 통해 엄마를 생각하지요. 그리고 성모님께 하고 싶은 말로 소설을 마무리합니다.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 성모님을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부탁합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다.”(요한 19,27) 오늘 복음에서 아들로부터 어미 됨을 부정당하신 성모님은 십자가 아래, 그 아들의 죽음 앞에서야 다시 어미 됨을 인정받은 듯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모님은 결코 예수님으로부터 어미 됨을 부정당하신 적이 없습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21)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아드님으로 잉태하신 그 순간부터 이미 취하셨던 것이지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 앞에서 오히려 성모님께 당신의 ‘사랑하시는 제자’를 통해 우리를 부탁하셨습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핏줄로 맺어진 혈연관계를 잊으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는 영적 가족 공동체를 이루도록 더 끈끈하게 묶어놓으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묵주기도를 한 번 더 바치고 싶습니다.
박기석 신부(서울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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