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우리 교우들이 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 가장 자랑스러워 해야 될
하느님의 능력을 보이는 게 뭘까?
그것은 십자가의 능력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천주교신자들이 외인들과, 아니면 혼자 밥을 먹을 때
십자가를 긋고 밥을 먹는 사람이 여자들은 10명 가운데 7명 정도가 나왔고
남자들은 3명이 채 안되게 나왔어요...찔리지요...찔릴겁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나와 내 말을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게 여긴다면
내 하늘에서도 너 모른 척 할 것이다.‘
저는 식당에 들어가면 식당 사이를 쭈욱 다니면서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의 손가락을 휙 훑어 봐요.
천주교신자들은 대개 쇠반지든, 은반지든, 금반지든..묵주를 끼고 있어요.
‘아, 저 형제가 우리 신자구나!’
그 앞에 앉아서 화살기도 쏘지요.
‘저 형제가 주님의 자식입니다. 아마 직장 동료들과 같이 밥을 먹으러 나온 모양인데 외인들 앞에서
당당하게 십자가 긋고 밥 먹게 해 주십시오.’
그날 따라 밥이 나오니까 그 형제 기도할 생각은 안하고..제일 먼저 밥 퍼먹어.
200년 전에는 외인들 앞에서 십자가를 긋는 것 자체가 죽음, 즉 순교를 나타내었지요.
십자가 그으면 포졸들이 잡아갔어요.
그런데 지금 외인들 앞에서 십자가 긋는다고 경찰이 출동합니까?
여러분들 잡으러 옵니까?
너희들이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하늘에서도 내가 너를 모른 척 할 것이다.
영적 순교 중에 하나가 뭐냐?
주님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거예요.
참 많은 신자들이 집에서는 어떻게든 해요.
그런데 밖에서 일반신자들을 만나면 천주교신자라는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인지,
성호 긋는 게 그렇게 창피한 일인지....평소 자기가 살아가는 모습이 괜찮았다면 당당하게 그었겠지만
지가 살아가는 모습이 외인들이 볼 때
‘내 주제에 십자가 그었다가 천주교 망신만 당하지..
저 사람들이 내가 천주교신자라는 것 모르는 게 낫지.’
그렇게 겸손한 마음에서 안 그을 수도 있겠지요.
어느 형제 한 분이 23년 만에 고백성사를 보러 왔어요.
성사를 보고 차 한잔 하면서 자기가 성사 보러 온 동기를 얘기하는데
어느 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데요....앞자리에 어느 분이 와서 앉더래,
그 양반이 밥이 나오니까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을 정도로
‘주여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람들이 밥 먹다가 다 쳐다보았대요.
그 앞에서 밥을 먹고 있던 그 사람은 충격을 받았대요.
‘그래, 나도 천주교신자지...’
곰곰이 냉담한 햇수를 세어보니 23년이 흘렀더래는 거야.
어릴 때는 복사까지 섰었고, 중학교 때는 신학교까지 간다고 꿈에 부풀어 있던 사람이었어요
결혼하고 혼배성사 받자마자 먹고사는 것 바쁘다고 한 주 두주 빠지다보니
한 달 두 달 빠지던 게 1년 2년 되었고.. 어, 하다 보니까 벌써 23년이 지난 거야
'아, 주님께서는 저 형제의 십자가 성호를 통해서 나를 회개시키셨구나!‘
그날 밤에 성당을 찾아온 거예요.
“고해 성사 주십시오.”
여러분들이 식당에서 삼종기도 할 때, 길에서, 차에서, 버스 안에서, 길에서 묵주를 들고 다니면서
십자가를 그을 때, 묵주를 들고 걸어오는 어느 한 사람을 보면서 안 보는 척 하지만
그 여자의 손에 들려진 묵주를 보면 가슴이 찡하지요.
‘내가 성당에 안 나간 지 어쩌다가 어느새 5년이 흘렀구나! 내가 명색이 꾸리아 부단장까지 하던
인간인데 더 이상 괴로워서 못 살겠다! 이번 주에 성사보고 정리하자.’
여러분들이 우연히 긋는 십자 성호라 하더라도
수 십년 냉담하던 영혼을 하느님께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그만큼 십자가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멘!’ 하셔야지요.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는데 천주교는 계시종교입니다.
세계 3대 계시종교가 있어요.
첫 번째, 그리스도교 두 번째, 유대교 세 번째, 회교
계시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절대자 신이 그분의 주도권에 의해서 만들어진 종교를 말해요.
그 외에는 자연종교이지요.
불교는 계시종교가 아니예요.
석가모니라고 하는 한 성인이 도를 깨우쳐서 깨달은 자가 되었지요.
석가모니는 보리수 밑에서 성인이 되었지만 다른 스님들은 다 각자 다른 방법으로 성인이 된 거예요.
그림 그리던 중광이라는 스님은 희한하게 살다가 갔지요.
그 스님은 창녀촌에도 갔어요.
왜 창녀촌에 가느냐...하면 저 불쌍한 여자들 구원하기 위해서 다닌다고 그랬어요.
남이 들으면 미친놈이지만 그 나름대로 도가 튼 것이지요.
자연종교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나 계시종교는 은총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우리가 못하는 부분은 은총으로 채워져요.
그러나 불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기를 쓰고 노력해야 되요.
천주교는 계시종교이고 2000년 묵은 고목이에요.
20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요.
천주교 씨를 말리려고 한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놓았습니까?
얼마나 가치가 있길래 하나뿐인 목숨과 바꿀 수 있겠는가!
거듭거듭 외쳐도 모자라고 뼛속 깊이 새겨도 다 새기지 못하는
순교자들이 늘 순교 앞에서 배교하지 않도록 서로 손을 잡고 외쳤던 영적 구호!
외쳐봅시다. 따라하십시오.
오직 예수님께 대한 사랑
오직 예수님께 대한 충성
오직 예수님께 대한 순명
이것이 바로 순교자들이 외쳤던 3대 영적구호입니다.
군인들도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를 잘 살기 위해서 연병장에 모여서 구호를 외칩니다.
우리 순교자들은 감옥 안에서 얼마나 배교하고 싶었겠습니까?
얼마나 주님 모른다고 하고 싶었겠습니까?
큰 유혹이 있을 때마다 서로 손을 잡고
오직 예수님께 대한 사랑
오직 예수님께 대한 충성
오직 예수님께 대한 순명을
목이 터져라고 외치면서 나가서 매를 맞고 뼈가 부서지고
주리를 트는 그 순간에도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외쳤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고상 앞에서 십자 성호를 긋고 이 영적 구호를 외쳐야 되요.
‘오직 예수님만을 위해 충성하겠습니다.’
오직 예수님께 대한 충성
오직 예수님께 대한 순명
오직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하려고 할 때 늘 걸려 넘어지는 게 뭐겠습니까?
‘엄마, 그 십자가에다 침 뱉고 우리한테 와서 살아!’
가족들이 눈에 밟혔을 거예요.
‘내가 살아야 우리 새끼들 거지가 안 되는데...’
하느님께 대한 순도 100% 짜리 사랑을 할 때는 가족들이 항상 걸림돌이예요.
동의하십니까?
오직 예수님께 충성을 할 때 늘 나를 걸려넘어지 게 하는 것이 뭐냐!
죽음에 대한 공포예요.
이 세상 하나밖에 없는 인생, 누가 쉽게 죽고 싶겠습니까?
주님께 대한 충성으로 불탈 때마다 죽음에 대한 공포
오직 예수님께 순종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게 뭐냐?
자존심이예요.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 내가 가지고 있는 자존심...
이런것이 늘 하느님께 대한 순명에 걸려넘어지게 합니다.
‘오직’ 이라고 하는 순도 100%를 지향하는 하느님에 대한 충성과 사랑과 순명을 지켰던
순교자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결심하는 시기가 바로 순교성월입니다.
순교는 변화되는 겁니다.
작년에도 순교성월이 있었고 올해도 벌써 중반기를 치닫고 있고
내년에도.....죽을때까지 순교성월은 오지만 순교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 삶입니다.
분노하는 인간에서 온유하고 평화로운 인간으로 변화되는 것이
순교성월의 첫 번째 뜻이예요.
기쁨의 반대는 슬퍼하는 것이 아니고, 성질부리는 겁니다.
우리는 많은 스트레스 속에 살아갑니다.
때로는 인간관계 때문에, 때로는 물질에 대한 애착 때문에
얼마나 화가 많이 나고 많은 병이 생깁니까?
병 걸리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제 저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성령대회 피정을 시키고
저녁에 좀 시간이 있어서 외삼촌이 풍을 맞으셔서 치료하고 계신 병원으로 인천까지 내려갔다
왔는데 가보니 다행히 말은 하시고 오른 팔을 잘 못 쓰셔요.
우리 외삼촌은 참 유머가 있고 재미있는 사람인데 그 병원에서도 계속 주변사람을 웃기는 거예요.
나를 딱 보더니
‘아유, 신부님, 제가요즘 비싼 수업료를 내고 인간공부 합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어요
하루 다섯 시간 물리치료 하는데 고릴라 같은 놈이 밟고 눌르는데 미치겠습니다. 너무너무 힘듭니다.’
그러면서 당신 오른 손을 차디찬 왼손으로 당신 배위에 올려놓으면서 이 두놈이 한 날 한 시에
나왔는데 이제는 이 두 놈이 서로 모른척하고 산다는 거야...참,제가 이렇게 약한 줄 몰랐습니다.'
기가 막힌 명언을 하시는 거예요.
우리 외삼촌은 일흔 여섯이지만 젊은 시절 약사로 계셨어요.
등산도 잘하시고 건강을 얼마나 챙기셨는지....몸에 좋다는 것은 다 잡수셨어요.
하루아침에 풍에 쓰러지고 나니까 이 손이 덜렁덜렁하고...이 두 놈이 서로 모르는 척 한다는 거야.
‘참, 우리 삼촌 내 강론 재료 하나 또 주시네!’
외삼촌은 누워 있으면서 많은 묵상을 한 대요.
천장에 누어서 보면 등이 성령 비둘기로 보인다는 거예요.
너무너무 착해지신 거예요.
“신부님, 비싼 수업료 내고 인간공부하고 있어요, 제가 깨달았어요.
‘내 꺼’ 라고 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숨쉬는 것 조차도 ‘내 꺼’가 아니예요.‘
두 달 동안 산소호흡기 끼고 계시다가 지금은 죽이라도 드시는데
그 당당하던 양반이, 세상 무서운 것 모르던 양반이, 그 자존심 강하던 양반이,
세상에서 똑똑하기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하던 그 양반이
여기가 가려워도 손 하나 꼼짝 못한다고 그래요.
처음에는 너무너무 화가 나고 분노가 많이 생겼대요,
그런데 어제 만났을 때는 외삼촌은 성인의 경지였어요.
얼마나 멋있는가!
한 날 한 시에 같이 나왔는데 두 놈이 서로 모른 척 하고 산대요.
첫째, 자기 성질 이기는 것이 바로 순교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 잠자리에 들기까지 적어도 다섯 번 이상 성질부릴 기회가있을 거예요.
그것 참는 게 순교예요.
오늘도 수십 번 여러분들에게 성인 될 기회, 순교자가 될 기회 주실 거예요,
집에서 누가 시비 걸더라도 참으시고, 직장에서도 참으시고...
하느님이 내가 속 썩혀 드릴 때 얼마나 참으셨던가를 생각하면서 참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 하느님 속 많이 썩혀드렸잖아요.
그치요?
수도 없이 썩혀 드렸어요.
하느님, 그때마다 우리 벌 안 주었지요?
우리가 속 썩힐 때마다 그 자리에서 즉결심판 하신다고 하면
이 자리에 몸뚱아리 성한 사람 없을겁니다.
성질부릴 때마다 이빨 하나씩 뽑아버려.
지금 다 틀니하고 있을거야 .
주일미사 빠질 때마다 발가락을 하나씩 뿌러트려.
발가락 남아 있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남 얘기할 때마다 다 혓바닥을 이만큼씩 빼버려.
다 혓바닥 내어놓고 살거야!
그 즉시 벌을 주시지 않는다고 해서 하느님이 눈이 침침해서 못 보시는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다 알고 계시지만 기다리고 참으시는 거예요.
우리가 하느님 속 그렇게 썩힐 때마다 그 분이 무한히 참으셨듯이
성질 날 때마다 이를 악물고 참으세요.
그것이 바로 순교자 되는 지름길입니다.
.
우리는 덕을 잘 쌓아놓았다가도 자그마한 화 때문에 한 순간에 그 공로를 허물어트립니다.
저녁내내 손에 묵주 들고 기도하며 살다가 남편과 한 이불 덮고 살면서 남편이 방귀 끼었다고
그것 때문에 이불 베개 들고 밖으로 기어 나가면서 싸우고 나가!
신부님, 어째 그렇게 본 듯이 잘 아십니까?
그럴 것 같애~ ^^
에구, 혼자 사는게 상팔자지~~
두 번째, 순교는 순명하는 겁니다.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변화되는 겁니다.
하느님과 교회에 순명하는 겁니다.
하느님께 순명은 신덕의 핵심입니다.
받아들일만 한 것은 누구나 받아들이고 삽니다.
쉽게 이해가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순종하기 쉽습니다.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순종입니다.
말도 안 되지만 ‘네’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여러분의 양심을 통해서 하느님은 끝없이 순종시험을 합니다.
여러분의 본당신부의 입을 통해서 때로는 내 신덕을 시험할 때가 있습니다.
주교님의 입을 통해서 사제들의 순명을 시험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역사는, 우리 교회의 역사는
항상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져 왔습니다.
구약의 성조들과 예언자들, 성모님과 그리고 예수님의 순종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교회가 존재하는 겁니다.
순종하느냐, 거부하느냐 하는 갈등이 반드시 있지만 성모님처럼
‘예,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하면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순종은 내가 골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명령임을
순종의 결과는 축복과 기적을 일으킴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순명하는 것도 큰 순교입니다.
세 번째 순교는 상처를 주는 입에서 평화와 기쁨을 주는 입으로 변화되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이기기 힘든 상대가 바로 자기 입입니다.
맞지요?
거짓말 안 한다고 맹세해 놓고도 밥 먹듯이 거짓말을 또 합니다.
내가 오늘 이 성사 보는 것을 기회로 절대 남 험담 안 한다고 해 놓고도
고백소 나가면서부터 벌써 험담시작합니다..
잘난 체 안 한다고 해 놓고도 끊임없이 잘난 척합니다.
얼마나 우리는 입으로 헛맹세를 하고 삽니까?
자기 혀를 다스리는 자가 영혼을 다스립니다.
성숙한 신앙인의 척도는 입을 얼마나 다스리냐에 달려있습니다.
기분 내키면 하느님 사랑하고
마음에 들면 하느님께 충성하고
좋은 일 생기면 하느님께 순명하는
그러한 취미생활의 신앙이 아니라 순도 100%를 지향하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충성과, 순명의 삶을 살았던
그 시작의 출발점은 화나는 것을 참는 것이요, 철저하게 순명하는 것이요,
어떤 일이 있어도 입으로 죄짓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라는 것을 깊이 명심합시다.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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