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9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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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현 | 작성일2011-09-21 | 조회수301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11년 9월 22일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7-9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들 안에서 함께 사셨던 예수님, 지금 우리는 그분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그분 위에 아무도 없다고 말하지만 우리의 결론이 실제 우리와 사셨던 예수님의 모습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사람들 속에서 구분해내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복음을 통해 펼쳐집니다. 요한, 엘리야, 옛 예언자 중 한 사람... 이 모든 것은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당사자의 이름이 불리지 않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이고, 이것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오시면서 선택하신 방법을 드러내 줍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하는데 그에 걸맞는 조건과 자격을 말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싶다해도 그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그의 말은 스쳐지나가는 바람결과 같고, 혹 아는체를 하고 싶어하는 교만하고 주제넘은 사람으로 간주되고 맙니다. 때로 그 말에 귀를 기울인다고 해도 그가 어디에서 그런 능력을 얻었는지를 궁금해하는 정도가 우리 관심의 대부분입니다. 복음에서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당황했지만 그분의 모든 것의 이유를 유명한 이들에게서 찾는 사람들의 소문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유명하지 않으신 예수님, 그래서 그분의 이름은 빛이나지 못합니다. 알려지지도 못합니다. 그분의 이름만으로 하느님을 이야기하는데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모습은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과 선택된 사람을 찾아다니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습니다. 만약 예전과 같이 우리가 생활한다면 그리고 또 다시 하느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선택이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삶의 이웃의 모습으로 찾아오신다면 우리는 복음에서처럼 평범하기 그지 없는 한 사람을 두고 그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복음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가 당신에 대해 다른 예언자들을 빌어 설명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수난의 순간까지 당신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지키셨고 당신의 삶에 충실하셨습니다. 당신의 본 모습을 알리는 것에는 힘쓰지 않으시고 오직 곁에 있는 이들을 가르치고 어루만지며 누구나 하느님을 말하고 배우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에만 집중하셨습니다. 결국 그들이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고 걸어가는 악의 길과 죄의 길에 당신의 십자가로 거울이 되어 주셨고, 부활을 통해 깨달음을 주시고 당신 승천과 성령을 통해 하느님의 진심과 우리가 걸어야 할 영원한 삶의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분,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분. 그분이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격이 아닌 삶으로 하느님을 찾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삶 속에서 발견되는 모든 순간과 사람들 속에서 그 모습 그대로 하느님을 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순수한 눈과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하느님을 말하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는 것을 어색해하고 다른 이유를 찾으려 드는 모습은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 말하면서도 우리를 자신을 부족하다고 하느님에게서 멀리 떼어 놓는 일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한 번 들어서 잊어버리는 이름, 그 이름이 우리를 구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이 "예수"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가 하느님이 우리 중에 정하신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그 이름이 바로 당신의 이름일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누구에게나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이름이 됩시다. 아니 그런 사람이 됩시다. 요한을 말하던 사람들, 엘리야를 말하던 사람들, 옛 예언자들을 말하던 사람들은 결국 이 사람에게 하느님의 자격을 논하며 십자가를 건네고 죽음을 주었지만 그들은 결국 그들이 무시하던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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