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종의 모습으로 빈자처럼 살아간다는 것 [사랑의 고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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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이수 | 작성일2011-09-22 | 조회수37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종의 모습으로 가난한 마음의 빈자처럼 살아간다는 것을 서러워 마십시오.
오직 서러워 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지 못한 체 종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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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고통을 극복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하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고통을 인간에게 열어보여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자신이 당신의 구속적인 고통 속에서 모든 인간 고통에 참여하는 분이 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고통을 발견할 때 또한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의 고통도 재발견하게 되어 새로운 의미로 풍부해 지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까지 이끌어간 사랑(아버지의 사랑)을 알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고통받고 죽으시면서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셨다 할진대 그분은 이 고통 및 죽음과 더불어 당신께서 사랑하신 사람 안에 살아계십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 안에 살아계시기에 그분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 사람에게 일치되십니다. 이 일치로 말미암아 세상은 나에게 대해서 죽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특별히 고통을 통하여 활동하고자 하시는 당신 원의를 확인하셨습니다. 이 약함과 자기 비움 속에서야말로 당신의 능력이 알려지게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먼저 나(그리스도)를 미워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면 시련과 곤궁 속에서 인간은 고통 때문에 잃어버린 줄로 생각했던 '영혼'을 재발견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특별한 소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와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를 통하여 인간과의 결합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 결합하는 이 몸 안에서 대저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은 비단 그리스도로부터 힘을 받고 있을 뿐만아니라 또한 자기 고통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창조적 고통에 관한 진리의 절정을 이룹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의 구속적인 고통을 모든 인간의 고통에로 향하여 열어놓어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고 있는 한 그리스도께서 구속을 성취하신 그 고통을 자기 고통으로 실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이 완전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더할나위 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통하여 성취된 구속사업이 인간 각자의 고통 안에서 표현되고 있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고통은 인간의 역사 안에서 계속 살아 있으며 특별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서 살아있고 발전하고 있으며 이 차원에서 인간 고통이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결합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고통을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자기 품 안에 그리스도의 고통의 신비를 안고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2세 교황님 교서 / '구원에 이르는 고통' 중 한단락 발췌 요약> 괄호 안 = 게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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