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9월 22일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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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9-22 | 조회수822 | 추천수14 | 반대(0) 신고 |
9월 22일 연중 제25주간 목요일-루카 9장 7-9절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두려움 앞에서>
아내 헤로디아의 꼬임에 빠져 본의 아니게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고 난 뒤 후환이 두려웠던 헤로데였습니다. 괜히 잔칫상 앞에서 우쭐하는 기분에 만용 한번 잘 못 부린 것이 대예언자 세례자 요한의 참수로 이어진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수백 번 후회해 봐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 뒤로 그의 꿈자리는 얼마나 뒤숭숭해졌는지 모릅니다. 잠을 자다가도 식은땀을 흘리며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의인의 목숨을 날려버린 헤로데, 큰 악행을 저지른 헤로데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살아생전부터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이은 예수님의 출현은 더욱 그를 불안하게 했습니다. 혹시라도 세례자 요한이 환생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처형하도록 명령을 내린 자신을 찾아와 보복하지는 않을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헤로데의 모습이 참으로 비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헤로데만큼은 아니지만 다양한 두려움의 지배를 받아 삶이 위축되고 힘이 소진되어 힘겨운 나날을 살아갑니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두려움, 이웃에게 저지른 과오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잊혀질 것에 대한 두려움, 소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홀로 쓸쓸히 죽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하느님 진노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두려움을 물리치는 가장 좋은 무기는 사랑입니다. 요한 1서는 이를 잘 뒷받침 해줍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쫒아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요한1 4장 18절)
두려움이 다가올 때 그저 두려움이 사라지기만을 희망한다고 해서 그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두려움에 당당히 직면해야 하고 대처해야 하는데, 그 비결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열렬하고도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수시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잘 파악하고 계셨기에 끊임없이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하시며 두려움의 숲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을 권고하십니다.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겁내지 마라. 내가 너희 힘을 북돋우고 너를 도와주리라. 내 의로운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리라.”(이사야 41장 10절)
여기서 중요한 것 한 가지, 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하시는데, 두려움을 느끼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내면에 하느님께서 굳건히 자리하시고, 그분의 성령께서 활동하고 계신다면 그 어떤 두려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두려움의 해독제는 하느님을 향한 굳건한 신앙입니다. 또한 굳건한 신앙의 기초는 열렬한 기도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으로 열심히 기도할 때 우리에게 두려움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닙니다.
세례자 요한을 참수한 헤로데가 남은 생애를 두려움 속에 부들부들 떨면서 살았던 것에 비해 세례자 요한의 삶은 정녕 두려움에 당당히 맞선 빛나는 삶, 두려움을 넘어선 승리의 삶이었습니다. 그의 내면은 하느님의 성령으로 충만했기에, 그의 영혼은 하느님의 말씀과 굳건한 믿음으로 가득 찼기에 자신의 목을 베러 온 휘광이들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힘과 용기를 내어라. 그들을 두려워해서도 겁내서도 안 된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와 함께 가시면서, 너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다.”(신명기 31장 6절)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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