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을 죽인 죄책감에 시달리던 헤로데는 자신이 목을 벤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죄책감과 불안에 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과 죄책감, 걱정과 공포 속에서 떠오르는 예수에 대한 궁금함…. 이것은 단지 ‘요한일까’라는 의구심과 두려움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 안에 드리워진 하느님께 대한 갈망, 목마름일 것입니다.
유영철 사건이 떠오릅니다. 많은 사람을 살해하고도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하며 잡혀가던 그가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에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가 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마음속에도 하느님께 대한 갈망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한테 숱한 폭언과 폭행을 당하며 자라난 그였기에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한 인간의 죄스러움 속에는 상처가 있습니다. 그 상처에는 치유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상처를 치유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분의 사랑을 진작 알았더라면,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진솔하게 받아봤더라면…. 그가 그렇게 살인마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한테도 숨겨져 있는 하느님께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죄스러움 속에 감추어져 있는 하느님께 대한 갈망을 발견하고 또한 이웃한테도 그 갈망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심종미 수녀(전교가르멜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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