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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 어디 있느냐?'
작성자김열우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25 조회수368 추천수1 반대(0) 신고

“너 어디 있느냐?”

“당신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 먹고 죄책감에 빠져 숨어있는 아담을 찾으시는 하느님과 아담의 대화내용입니다.

 

‘너 어디 있느냐?’

하느님의 언어입니다.

어버이의 언어입니다.

사랑하는사람의 언어입니다.

 

개교기념일 겸, 동창회 모임 기별을 받았습니다.

H는 이번에도 나의 발목을 잡아 좌절하였는데, 마침 그가 친구집 결혼식 참석으로 외출하여, 그 빈 시간에 잠깐 다녀올 작정을 하였습니다.

68년 졸업한지, 43년-

홍제동에서 봉천동으로 이전한지도 꽤 오래되었다는데, 단 한번도 찾아보지 못했던 무심함을 자책하면서, 택시를 탔는데 길마저 막혀 애를 태웠습니다.

아담하게 세워진 건물들과 따듯하게 안내하는 선후배와 동기들, 40여년전 담임을 맡으시어, 어느 한 대목 빈틈없이 가르쳐 주시던 동문의, 이제는 연로하신 은사님들이 계시어 마음 든든하였습니다.

감회도 잠시,  H의 노기띈 얼굴이 떠 올라, 식순도 마치기 전에 나는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돌아오는 도중, 전화가 울렸습니다.

“너 지금 어디있니?”

“동창회”

“가지 말랬는데, 속이고 갔어?”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하며 맞섰습니다.

그의 사랑의 법칙에는 먹혀들지 않는 말이라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어쩌다가 이런 특별한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였단 말인가?

이 못 말릴 사랑의 강물에 빠져죽지 않게 하소서!

자책! 한탄! 절규! 호소!

‘너 어디 있니?’ 라는 말의 위력이 이리도 치명적인 것이라는 것을 절감하였습니다.

 

결혼 후 5년 만에 얻은 딸-

어머니의 나에 대한 사랑 또한, 남달랐습니다.

전화도 없던 시절, 친구들과 모처럼 영화관에 가면, 화면보다는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실 것만 같은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려 도중에 일어서야 했습니다.

 

내 팔짜야! 내 팔짜!

혹자는 부럽다고도 할지 모를, 그 못 말릴 사랑의 심각한 피해자인 것입니다.

 

사실, 나역시, 내 아이들에게 그 못말릴 사랑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가끔,

“하느님 저는 왜, 예수님처럼 남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할 사랑이 없을까요? 자신만을 위해 살고자 하는 저에게 예수님의 마음, 따듯한 사랑과 헌신의 마음을 주소서!” 기도드립니다.

 

그런데, 그 지극한 못말릴 사랑 때문에 누구를 장애할 수도 있음을……..

사랑은 냉철한 이성을 동반하여,

그가 잘 되기만을 소망하는 것이며,

아픔조차 참아낼 능력일 터인데……

 

‘너 어디 있니?’

하느님,

모든 어버이들,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사랑의 언어입니다.

 

그 사랑의 줄을 누가 끊으랴?

죽음인들?

2011년 9월 25일 오전 4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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