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가해 연중 26주간 수요일-“그러면 천 번을 찍어라!”
시인 정호승씨가 기자 생활을 하실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성철 스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성철 스님은 성격이 완고하여 어린이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 분을 만나려면 부처님께 먼저 1000배를 하고나서 청해야 했습니다. 또 그 분에게 사진을 찍자고 자세를 취해달라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정호승씨는 운 좋게도 스님을 만나 대화하고 사진을 찍는 것도 허락을 받았습니다. 해인사에서 설법을 마치고 백련암 방향을 가던 중 백련암 표지판이 나오자 그 앞 바위에 앉아 포즈를 취해주셨다고 합니다.
이 때다 싶어 사진기를 마구 눌러대는데 “왜 그렇게 사진을 많이 찍노. 필름이 안 아깝나?”하고 물으셨습니다. 그 분은 다른 스님들이 먹고 설거지가 끝난 후 하수구로 내려가기 직전에 걸려있는 밥풀들을 이쑤시개로 하나하나 찍어서 드시던 분이었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많이 찍어야 합니다. 벌써 필름을 다섯 통도 더 썼습니다.”
“그래, 그러면 천 번을 찍어라.”
정호승씨는 이 말씀이 농담인 줄 알았으나 있는 필름을 다 쓸 때까지도 아무 불평 없이 원하는 포즈를 다 취해주셨다고 합니다.
(참조: 정호승, 정호승의 새벽편지 중 ‘사진을 찍으려면 1000번을 찍어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라고 하십니다. 그 의미는 일단 주님을 따르기로 결정했다면 자꾸 뒤를 돌아보거나 후회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선택은 목숨을 건 선택이어야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넜지만 그 이후로는 해충도 많고 물도 부족하고 만나도 맛이 질리고 고기도 먹지 못하는 등의 어려움 때문에 가나안 땅으로 향하면서도 자꾸 이집트 쪽을 바라보며 자신들을 탈출시켜 준 모세에게 불평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막에서 모두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아주 뜨겁거나 아주 차면 삼키시지만 미지근하면 뱉어버리시는 분입니다. 어정쩡한 자세를 제일 싫어하십니다.
오늘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세 명 찾아옵니다. 그러나 모두 이런 어정쩡한 자세로 주님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따르려고 하심을 예수님은 간파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은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사람이라 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길은 꽃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임을 명확히 밝히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홍해를 건넜다고 바로 가나안 땅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막의 황량함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 다시 예전 삶이 그립다면 가나안 땅은 더 멀어지게 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이들의 장례는 죽은 이들에게 맡기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은 이들이란 육체로는 살아있지만 영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풍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면 옛 사람들이나 옛 사람들의 판단을 무서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이집트에 남아있고 몸만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이는 사람들의 애정이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대립되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께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들을 줄여나가거나 그 분을 떠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이것 아니면 저것입니다. 독수리 발에 실 하나만 묶여 있어도 하늘로 날아오를 수 없습니다. 다 끊어버리던가 아니면 세상에 남아있던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철스님의 자세를 본받아야합니다. 결정을 내리려면 신중히 하고 일단 결정을 내렸다면 자신의 결정에 끝까지 자신을 순종시키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았다면 착한 신앙인이 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뜨겁게 신앙을 증거한 ‘성인’이 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합니다. 하늘나라에서도 다 같은 수준의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달리기를 한다면 일등을 하려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치고 뒤쳐져 억지로 따라가는 것보다 일등을 하려고 달리는 것이 훨씬 힘이 덜 듭니다.
<아주 특별한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