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학하는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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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1-09-28 | 조회수51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샬롬 샬롬.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요한6,66)
이 일은 무슨 일인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자 수 많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찿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요한 6,26-27)라고 말씀하시고 당신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6,51) 라고 말씀하시자,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라며 떠나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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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알아들으려고 하는 공부를 우리는 신학을 한다고 합니다.
신학은 신(하느님)에 관해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좀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느냐? 그러면 하느님에 관해서 과연 그 하느님이 연구의 대상이 될 수가 있느냐는 문제겠지요. 여기서 학문한다는 것은 지성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인데 신(하느님)이 지성적인 접근의 하나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느냐라는 면에서 모든 신학자들은 약간은 출발점부터 기우뚱 거리게 됩니다.
하느님에 관해서 우리가 지성적으로 접근하는거,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아니면 그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부터 생각을 해 보지요.
학문한다는 게 뭡니까?
좀 의심하는 겁니다. 정말 그럴까? 이성적으로 한번 판단해 보자. 이렇게 뭔가 좀 의심하는 겁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오히려 신앙이 좀 흔들리는 그런 어떤 체험이 저한테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거는 여러분들도 신학적으로 성경 텍스트를 한번 읽어 보자라는 저의 의도와 함께 이 자리에 계신다면 제가 드리는 강의의 말씀이 여러분들의 신앙을 조금 흔들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랑 같이 일년의 시간을 보내시면서 여러분은 전에와 다르게 어떻게 하셔야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신앙이 흔들릴 위험이 있으니까 더 열심히 기도하셔야 합니다.
따라서 성서 백주간을 하시면서는 정말 더 열심한 기도 생활과 함께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이것은 오히려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생각을 하시고 또 집에서 성서를 읽으실 때도 성서를 읽기 전에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고, 하느님을 만나고 싶습니다라는 어떤 기도와 함께 성서를 읽기 시작하시고, 또 성서를 다 읽으시고 나서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습관을 가지시면 참 좋겠습니다."
이상은 최승정 신부님의 성서 백주간 17회 강의 첫 부분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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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인간이 이성적으로 이해함의 어려움은 이미 요한 복음 6장에서 제자들이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학문의 수준은 획일적이지 않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셔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몫은 겸손함과 이해함에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구는 꾸준히 몇십 년을 신학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이제 막 시작한 사람부터 존재하는 사람의 수 만큼 다양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신학을 오래 해서 실력이 어느 정도 되시는 분의 글이 있는가하면 아직 초보자 되시는 분의 글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이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지니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묵상해 보자는 것입니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신학을 열심히 해서 많이 이해한 사람은 아직 초보라서 이해를 못하는 분을 기다려 주어야한다고 생각됩니다.
이해의 폭이 다르기에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하시는 것을 뭐라 하실 것이 아니라 나도 그런 시기가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반대로 아직 신학을 시작하신지 얼마되지 않으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다 이해 안되도 성모님처럼 그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히 생각하고 사시면 언젠가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1코린12,27)
이 주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이제 우리는 형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미 답은 주어졌습니다. 이제 살아내는 일만이 우리의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공동의 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1코린12,7)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나처럼 하십시오. 나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유익한 것을 찿습니다."
(1코린10,33)
그리고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1코린10,31)
"내가 여러분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주겠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꾕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12,31-13,3)
내 자신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주님의 말씀을 나에게 자주 들려주고 그 말씀을 살아내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기셨듯이 말입니다. 이미 주님이 몸소 보여주신 길이니 우리도 주님을 따라 살아봅시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거처하시며 우리도 당신의 말씀을 살아 노아의 시대에 하느님의 영이 없이 사는 '살덩어리들'이 되어 멸망의 길을 걷지 말고(창세6,12참조) 말씀을 살아내어 '하느님의 영이 깃들인 사람'이 되자고 두손 모아 주님 앞에 기도드립니다.
주님의 이름은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멘.
알렐루야~~~!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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