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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멘토와 증언자 - 9.2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9-28 조회수40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1.9.28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느헤2,1-8 루카9,57-62

 

 

멘토와 증언자

 

많은 이들이 수도원을 편안히 찾을 수 있는 것은

수도자들이 그들의 경쟁자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의 상대적인 가치를 초월하여 절대적 가치인 하느님만을 찾는

수도자들이기에 긴장하거나 경계할 것도 없습니다.

 

세상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검정수도복을 입은 수도자들을

선망하거나 부러워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닮고 싶고 따르고 싶은 롤 모델인 멘토로서의 수도자는 아닐 것입니다.

도대체 명예, 재력, 지위 등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수도자는 멘토가 아니라 시대의 증언자입니다.

예수님을 멘토로 모시고 따르는 시대의 증언자입니다.

멘토이자 증언자로의 삶을 사셨던 예수님이 그대로

우리의 멘토요 증언자의 모범입니다.

 

산상설교를 하실 때의 예수님의 모습은 인류의 멘토이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그대로 인류의 죄악을 폭로하는 증언자입니다.

영원히 인류의 죄악의 증언자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십니다.

직면하기 불편해도 직면해야 하는 영원한 걸림돌 같은 십자가의 그리스도요,

시대의 영원한 증언자인 십자가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강론 주제는 ‘멘토와 시대의 증언자’입니다.

바야흐로 멘토의 시대입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있어 멘토는

더 이상 지혜로운 어른을 칭하는 말이 아니라

인생 성공을 향한 롤 모델입니다.

예를 들면 '한비아'나 ‘안철수’씨처럼 따르고 싶고 닮고 싶은 사람입니다.

 

반면 이런 멘토의 대척점에 있는 게 263일 째 크레인에서 고동농성중인

시대의 증언자 ‘김진숙’입니다.

 

빛과 그림자처럼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멘토와 시대의 증언자입니다.

 

안철수가 빛이라면 김진숙은 어둠이요,

둘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현상입니다.

마치 부활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하나인 것처럼 말입니다.

 

하여 조국 교수는 다음과 같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안철수 현상과 김진숙 현상은 만나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 내야 한다.

  철수와 진숙은 힘을 모아

  새로운 정치, 경제, 사회 패러다임과 체제를 만들어 낼 때

  한국 사회의 진정한 진보는 시작 될 것이다.”

 

멘토와 시대의 증언자가, 빛과 어둠이 하나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며

바로 이를 성취한 유일하신 분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멘토로 모시고 살면서

십자가의 그리스도처럼 시대의 증언자로 사는 것입니다.

수도자는 물론 모든 믿는 이들의 삶의 길입니다.

 

9월 순교자 성월, 시대의 증언자 되어 살다가 순교로 삶을 마감했던

무수한 순교자들로 빛나는 가톨릭 성교회입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을 따르는 증언자로서 빛의 삶이 얼마나 엄중한 지 잘 보여줍니다.

누구나 따르고 닮고 싶은 멘토로서의 주님이 아닙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완전 무소유의 삶으로 하느님 나라의 증언자 되어 살라는 말씀인데

  이대로 살 자 몇이나 되겠습니까?

 

우리의 안주와 무분별한 탐욕에 제동을 걸면서

양심을 불편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죽은 이들의 장례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해 달라는 청에 주님의 이와 같은 말씀은

인간 상식에 어긋나 우리를 갈등케 하는,

참으로 양심을 불편케 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증언자 되어 사는 것보다

그 무엇도 앞세워선 안 된다는 것이며

출가자들은 가족에 대한 집착의 위험을 늘 경계하라는 가르침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증언하는 삶이 진정 영적으로 살아있는 삶임을 깨닫습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가족들과의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는 이에 대한 주님의 반응 역시

참 냉정합니다.

 

모든 판단의 잣대는 임박한 하느님의 나라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의 비전이 선명할수록

이탈의 자유에 빛나는 증언자로서의 삶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하느님 나라의 빛나는 증언자 되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의 양심을 끊임없이 자극해 불편케 합니다.

세상에 빛과 희망이 되지만

또 세상을 불편하게 하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요 증언자의 삶입니다.

 

보십시오.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없다면, 시대의 증언자가 없다면

죄악에 고통 중인 인류는

어디서 빛과 희망을, 위로와 평화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밝은 롤 모델인 멘토도 귀하지만

어둠을 밝히는 빛의 증언자가 더 귀한 세상입니다.

하느님을 멘토로 하여 증언자의 삶에 충실했던

1독서의 느헤미야 예언자입니다.

 

하느님의 증언자로서의 그의 겸손과 진실이 페르샤 임금을 움직였고

마침내 예루살렘 도성을 복구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아 냅니다.

 

느헤미야의 겸손과 진실한 믿음이 마지막 구절에서 잘 드러납니다.

 

“내 하느님의 너그러우신 손길이 나를 보살펴 주셨으므로,

  임금님께서는 내 청을 들어주셨다.”

 

오늘 신문에서 읽은 어느 두 분의 대화 내용에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지금은 야만의 시대 같아요.

  좌도 우도 아닌 상식과 몰상식의 대결-

-상식과 몰상식, 양식과 무식의 대결-

 

상식을, 양식을 살기가 버거운 물질만능, 금전만능 탐욕의 야만 시대에

상식과 양식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 그대로 시대의 증언자라 할 만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을 영원한 멘토로 모신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은총을 내려 주시어 증언자의 삶에 항구할 수 있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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