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3가지 눈/2가지 고통 [죽음의 고통과 생명의 고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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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이수 | 작성일2011-09-29 | 조회수352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3가지 눈
내가 나를 보는 눈.
남이 나를 보는 눈.
하느님께서 나를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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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가지 고통
세상적 고통
그리스도적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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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적 고통
흔히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이 든 사람들이 하는 소리이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고통은 말할 수 없었다.'
이런 고통은 자기 자신의 세상적 고통이다.
이런 고통을 통해 변화된 자신은 대개 교만해진다.
'너희들이 뭘 알아' 이다.
대체로 술을 마시며 자기 속을 푼다.
술에 의지하며 술로써 고통을 잊고자 한다.
하지만 술은 도리어 사람을 먹어버린다.
이런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세상 지혜를
어느정도 터득하여 교만해져서 고집이 세진다.
자기 주장을 절대 굽히지 못한다.
신앙과 결합하면
세상 고통을 대단한 십자가 고통으로 잘못 착각한다.
세상 고통은 남에게 생명을 주지 못한다.
자기의 세상 고통이 어떻게 남의 고통을 안고 갈 수 있을까.
같이 술을 퍼마시며 퇴보하는 것뿐이다.
만일 이 세상적 고통에서 마침내 극복하여
세상의 지혜 연륜이 상당하게 깊어졌다 하여도
그것은 신앙의 연륜이 아니다.
즉, 신앙의 고통 연륜이 아니라
단지 자기 자신의 세상적 고통 연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고통의 극복에서 나타난 지혜는
신앙이라기 보다는 삶의 지혜에 더 가깝다.
십자가 고통으로 잘못 착각하기 쉽다.
십자가의 고통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적 고통
그리스도적 고통은 그리스도와 일치하며 살아온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한 고통의 연륜이다.
술과 함께 살아온 고통의 연륜이 아니다.
세상적 고통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지 못한다.
자기 인생고통은 남에게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적 고통이 아니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적 고통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결합하여
그리스도처럼 고통의 수난을 받게 되는 고통을 의미한다.
남으로부터 예수님(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조롱과 멸시, 비웃음
그리고 그들로부터 받게 되는 온갖 상처들의 고통을
그리스도적 고통이라 부르는 것이다.
자기 가족, 자기 사업, 등등으로 겪은 세상적 고통을
그리스도적 고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십자가의 길은 그리스도적 고통의 길인데
이 길은 사랑 때문에 겪는 고통의 길이다.
자기 가족, 자기 사업 등등으로 꼬꾸라지는 극한 고통이
그리스도적 고통이라 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하겠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함으로써 겪게 되는 그리스도적 고통은
십자가 예수님 안에서 이웃의 고통에 결합되는 나의 고통을 말한다.
자기 가족, 자기 사업, 자기 직장 등등에서
자기 인생 삶의 고통하고는 엄격히 다르다.
하느님은 진리이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진리는 사랑이시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사랑 안에 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사랑 안에 있다.
진리는 하느님께서 말하시고
사람이 말하는게 아니다.
사람은 진리를 증언할 뿐이다.
그런데 진리를 증언한다는 것은
바로 사랑을 증거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를 참다운 신앙이다 하겠다.
그리스도적 고통을 겪는 사람은 겸손해 지며
삶의 지혜가 신앙 안에서 깊어진 사람은
신앙이라기 보다는 삶의 연륜이다.
그리하여 신앙이 아니기에 하느님 앞에 교만해지기 쉽다.
진리는 사랑이며
사랑은 진리이다
그래서 사랑 외의 진리는 없다.
<순교자 성월>
순교자의 눈은 하느님께서 나를 보는 눈을 지녔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며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부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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