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9월 30일 금요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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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9-30 | 조회수642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9월 30일 금요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루카 10장 13-16절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매일 매 순간이 기적입니다>
성향이나 코드라는 것 무시 못 하는 것이어서, 여러 사람들 가운데 더 마음이 가고, 더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장소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겠지요. 왠지 다른 곳보다 더 정이 가고, 한번이라도 더 가고 싶은 도시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볼 때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이 그랬을 것입니다. 다른 곳에 비해 더 당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임을 아시게 된 후 더 애틋한 마음에, 더 각별한 정에 이끌려 다른 곳보다 더 자주 방문하셨을 것입니다. 방문만 하셨겠습니까? 그 도시들에서 당신의 손길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환자들, 악령 들린 사람들에게 치유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그 도시 사람들, 예수님의 손을 통해 이루어진 수많은 기적과 징표를 자신들의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던 그 도시 사람들이 끝까지 하느님께 돌아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오늘 예수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에, 제발 집나간 아들이 빨리 돌아왔으면 하는 애틋한 심정에 극단적인 발언까지 던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바꾸어 들으면 이렇습니다. “내가 행한 큰 기적과 표징들을 보고도 변화되지 않고, 미동도 하지 않고 어제와 똑같이 살아가는 코라진과 벳사이다는 불행하다.” 관건은 돌처럼 완고한 마음이군요. 마음은 굴뚝같았겠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이중성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강경한 발언 이면에는 우리를 향한 질책도 일정 부분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매일 매순간이 기적입니다. 살아온 날이 기적이고, 살아갈 날이 기적이며,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이 기적입니다. 너무나 큰 죄인이고 큰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어제의 나를 거두어가시고, 어제의 내 부족함을 용서하시고,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신다는 가장 뚜렷한 표징인 새로운 하루 앞에 아무런 감동도, 감사의 마음도 지니지 않는 우리는 불행합니다.
너무나 은혜롭고 과분하게도 매일의 미사성제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파스카의 은총을 체험케 하시지만, 그래서 하느님의 구원 업적, 하느님의 크신 자비가 우리 매일을 스쳐가지만 둔감함에 이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우리는 불행합니다.
매일의 영성체를 통해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과 극진한 자비가 우리 인생을 관통하지만 그저 습관적으로, 무미건조함에 미동도 하지 않는 우리는 불행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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