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33“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34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35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36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38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39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버렸다. 40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42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4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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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우리가 하느님의 포도밭에서 제철에 소출을 낼 수 있게 하소서.
세밀한 독서(Lectio)
포도밭과 관련된 두 아들의 비유(마태 21,2832)에 이어지는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고, 누가 그분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유다 지도층(21,23)을 대상으로 예수님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포도밭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밭을 경작하도록 부름 받은 소작인들은 ‘이스라엘’입니다. 주인이 파견한 ‘종’은 예언자들입니다. 상속권을 노리는 소작인들에 의해 ‘포도원 밖으로 던져져’(39절) 죽임을 당한 ‘아들’은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십자가형을 당해 죽은 예수님이십니다. 포도원 주인이 포도밭을 다시 맡길 ‘다른 백성’은 이방인들입니다.
먼저 첫 단락(21,3341)에서 예수님은 이스라엘 역사를 이야기하십니다. 그분은 포도밭에 대한 이사야서 본문을 암시하며 말씀을 시작하십니다.(제1독서: 이사 5,17 참조) 이사야서 본문은 예언자 예레미야의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느님이 용서와 회심에로 계속 초대했음에도 충실하게 응답하지 않은 그분의 백성과 하느님의 계약 이야기입니다.(예레 7,24 이하; 9,13 이하 참조)
온갖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의 마음을 돌이키는 데 실패한 하느님은 마지막 순간에 마지막 선물인 당신 아들을 보내십니다.(37절) 이제 그 아들의 인격과 그분이 하시는 일 안에서 하늘나라가 이 세상에 현존하게 되고, 그분을 거부하는 것은 구원을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그 아들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하신 분이고(갈라 3,16), 이미 성경에 오시리라고 기록된 분입니다.(로마 1,34) 하느님이 아들을 보내신 것은 그분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상속자’로 삼기 위해서입니다.(갈라 4,7) 그러나 이스라엘은 선물로 주신 ‘아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아들은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히브 13,12) 받으셨습니다.
둘째 단락에서(마태 21,4246) 예수님은 당신 자신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교회의 머리, 모퉁이의 머릿돌’(42절 참조)이 되신 분으로 소개하십니다. 베드로는 성령강림 후 오순절 설교(사도 2,1436)에서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유다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는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다는 것을 대담하게 선포합니다.(사도 2,3336)
왜 예수님이 교회의 머릿돌일까요? 예수님은 한편으로는 유다인을, 다른 한편으로는 이방인을 신앙에로 부르시어 평화의 은총으로 서로를 일치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기 때문에 과연 ‘우리의 평화’라고 불리실 수 있습니다.(에페 2,14)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유다인들에 대한 심판선고처럼 들리지만(마태 21,4344), 인간의 생각을 넘어서는 하느님 자비에 따라(로마 11,3336 참조), 언젠가는 ‘모퉁이의 머릿돌’인 그분 안에서 두 민족이 결국 서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분께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1베드 2,45 참조)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여”(필리 4,8) 주님 포도밭의 좋은 포도나무가 되라는 초대를 받습니다.
묵상(Meditatio)
주님, 계속 되풀이되는 종들의 파견과 냉담한 반응을 보면서 사순절 성금요일에 당신 십자가에 입을 맞추며 부르던 ‘비탄의 노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내 백성아, 내가 너에게 더 할 것을 안 한 것이 무엇이냐? 나는 너를 위해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포도원을 마련해 주었건만 너는 어찌 나에게 가장 쓴 것을 주었느냐? 목마른 나에게 너는 신 포도주를 주었고 너의 구세주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지 않았느냐?” 주님, 당신은 저에게 당신의 포도밭을 맡기셨고, 저의 인간적 욕심으로 그 포도밭을 망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시간과 노력이라는 땀과 피를 흘려 수고로운 ‘열매’를, 풍성한 포도 열매를 소출하기 바라십니다.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속한 백성’이 아니라 부르심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기도(Oratio)
만군의 하느님, 제발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고 이 포도나무를 찾아오소서.(시편 80,15)
임숙희(가톨릭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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