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기도를 부탁하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매일 같이 기도드려 드리는 분이 마흔 분 정도 됩니다.
그런데도 또 기도드려 달라고 부탁하는 분이 있으면
어떤 때는 고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짜증나기도 합니다.
고마운 이유는 그래도 기도해줄 착한 사람으로
그분이 저를 여겨준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러다가도 어떤 때는 짜증이 나기도 하는데
기도가 필요한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제가 우울해지면서
어떻게 이 모든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에게 기도를 부탁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사람은
얼마나 고마운 사람입니까?
나를 오늘 복음의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여기는 것이고
나로 하여금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니 말입니다.
도움을 받는 것보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이고,
도움을 주어 그가 잘 되거나
위안이라도 되면 얼마나 행복합니까?
이런 행복감 때문에 저는 선제적으로,
즉 그가 얘기하기 전에
아픈 사람, 어려운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먼저 찾습니다.
그런데 제가 피곤하거나
마음이 편치 않으면 정 반대입니다.
고백 성사를 통해 죄 고백을 듣거나
상담을 통해 골치 아픈 얘기를 듣게 되면
그 어두움이 그대로 저에게 전해지면서
마치 제가 쓰레기통이 된 듯한 느낌까지 듭니다.
하여 오늘 복음의 사제나 레위인처럼
그 자리를 얼른 피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쓰레기통이 있어야
방이 깨끗하지’ 하는 넓은 마음은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아픈 얘기가 들어와 있을
그런 작은 여유도 없으면
그런 얘기는 그런 얘기를 들어줄 수 없는
내 작은 마음자리를 들춰내기에
나를 불편케 할 뿐입니다.
쓰레기통이 꽉 차면
아무 쓰레기도 받을 수 없듯이
내 마음이 나로 가득 차 있으면
너를 받아들일 수 없고
너를 위한 조그만 마음 씀도 허용치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이란
너를 위한 작은 마음자리인 것 같습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