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 유학시절에 친구들이 찾아오면 언제나 아시시를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마을이기도 했고,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시시를 여행한 친구들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주위의 예쁜 경관을 사진에 담기에 정신이 없는 관광객 형과 그곳에서 기도하며 성인의 삶을 느끼는 순례객 형입니다.
관광객의 눈으로 아시시를 본 이들에게 그곳은 그저 아름다운 마을일 뿐이지만, 순례객의 눈으로 아시시를 본 이들에겐 담벼락에 써 있는 작은 글씨 하나 그림 하나까지 성인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후에 또다시 아시시에 가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순례객으로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입니다. 스치듯 보고 카메라에 담는 사람과 귀담아듣고 마음에 담는 사람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독서에서 니네베 사람들은 흘려들을 수 있는 요나의 말을 흘려듣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향한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에 새겨 회개하려고 노력합니다. 복음에 나오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차이도 바로 이것입니다. 마르타는 주님을 뵙고 나서 그분의 시중을 드는 데 정신을 쏟지만,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당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깊이 마음에 새기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은 몫임을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시시를 마음에 담은 이들이 그곳에 다시 가고 싶어하듯이,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이들은 언제나 그분께 가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김대한 신부(수원교구 분당 성마리아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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